모든 신임 대통령에겐 이른바 ‘밀월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표를 주지 않았던 유권자들도, 대립했던 의회도 비판을 자제하고 새 리더에게 기대와 지지를 보내는 달콤한 허니문의 시기다.
해리 트루먼에서 리처드 닉슨까지 좋았던 시절에 새 대통령의 허니문은 평균 26개월이나 되었다. 그 후 양극화된 정치 환경으로 훨씬 단축되었지만 지지율이 55%를 넘고 운이 좋은 경우 9개월까지도 누릴 수 있었다. 갤럽의 데이터 집계에서 나온 수치다.
내일 취임하는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허니문은, 그러나 시작도 전에 끝나버린 듯하다. 보통 대통령들이라면 선거로 인한 분열을 치유하며 지지기반 확대에 주력했을 당선 후 취임까지의 정권인수기간 동안 그는 정치폭풍을 자초하며 사방에 ‘적’들을 만들어냈다.
지지율은 당선 후 46%에서 40%로 오히려 하락했다. 지난 수십년 새 대통령 중 최하위다. 낮은 지지율은 약한 입지를 의미하지만 “조작된 여론조사”로 받아친 그의 행보엔 거침이 없다.
한마디로 ‘좌충우돌’ - 국가 정보기관들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대결에 돌입했는가 하면 중국과 멕시코에 이어 독일을 분노케 하고, 나토를 모욕하고, 유럽연합을 폄하하면서 전통적 우방인 유럽의 공분을 사고 있다.
후보시절의 호전적 스타일도 여전하다. 자신을 비판한 민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하원의원과 할리웃의 톱스타 메릴 스트립에 살벌한 트윗 공격으로 보복해 물의를 빚었고, 미디어에겐 초강경 대응을 경고했으며, 자신의 친러시아 정책을 반대하는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경선에 출마해 낮은 지지율로 하차했던 린지 그레이엄을 향해선 “언젠가는 그도 1% 장벽을 깨려나?” 안 해도 좋을 조롱을 참지 않아 주위를 민망케 했다.
‘공화당 대통령’의 최대 자산인 ‘공화당 의회’와의 가차 없는 힘겨루기도 서슴지 않았다.
공화당 지도부는 정치 경험 없는 트럼프가 그들의 정책 방향에 동의하고 선거공약 입법화에서 의회의 리드를 존중해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생각은 속된 표현으로 “꿈 깨라”인 듯싶다고 폴리티코는 지난 한 두주의 워싱턴 동향을 통해 분석했다.
한 주 전 폴 라이언 연방하원의장은 트럼프의 수석 선임고문을 초청해 공화당이 추진하려는 세제개혁을 자세히 설명했다. 트럼프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 “너무 복잡하다”
트럼프와 공화당 의회가 ‘최우선과제’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던 오바마케어 처리에서도 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의회는 오바마케어 폐지 수순을 밟기 시작했지만 대안 마련까지는 상당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안 없는 폐지에 의한 ‘2,000만명 무보험자 추락’은 2018년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하는 의회에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폐지는 신속하게 하되 대체 입법은 2~3년의 기간을 갖자는 의견이 의회에서 대두되자 공화당의 미래에 별 관심이 없는 트럼프가 즉각 제동을 걸었다. “폐지와 동시에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면서 자신이 ‘모두를 위한’ 보험 구축하는 대안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호언장담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준된 후 발표하겠다는 그의 대안내용은 훌륭하다. 보험료는 더 싸게 커버리지는 더 좋게, 오바마케어 중 인기조항은 유지하고 정부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재정보조 위한 증세는 없고 메디케어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며…민주당 의원들도 반대하기 힘들 만큼 이상적이다. 그러나 공화당 의회에겐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다.
새해 첫 주 하원 공화당 간부회의가 의회 윤리국 권한을 축소하려다 “부당하다”는 트럼프의 트윗 비판으로 하루 만에 백기 투항하는 등 공화당 의회는 출발부터 ‘전통 무시·예측불허’의 새 대통령과 일하기가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민주당만이 아닌 공화당과도, 적대국만이 아닌 우방국과도 가리지 않고 부딪쳐대는 트럼프의 좌충우돌을 그의 지지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기득권층을 혐오하는 그들에게 미디어와 의회와 스타와 싸우는 트럼프는 여전히 변화를 실현시켜줄 희망이고 영웅이다. 그러나 트럼프도 대통령으로 수많은 결정을 내릴 것이고 지지자들이 언제나 트럼프 정책의 승자일 수는 없다. 지지표밭과의 밀월도 끝날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 중 과반수를 넘은 항목이 있다. 그가 “난 신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일자리 창출자가 될 것”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경제회복’ 능력이다. 61%가 염원 담긴 지지를 보내고 있다.
8년 전 이맘때 첫 흑인대통령 탄생의 역사를 쓴 자부심과 감격으로 축제의 물결이 넘쳐흐르던 미 전국의 거리는 지금 새 행정부를 향한 항의와 분노의 시위로 소란스럽다.
억만장자 새 대통령은 자기사업과 국익의 이해상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의 유별난 친 러시아 정책은 미국 외교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얼마나 많은 이민들이 추방공포에 시달릴 것인가, 우리의 드리머들은 구제될 수 있을까, 오바마케어가 폐지되면서 메디캘 혜택도 대폭 줄어들까…
“20일 정오를 기해 변화가 시작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을 약속한다”고 마이크 펜스 새 부통령은 다짐했지만 설레는 기대와 희망보다는 온갖 의문들이 꼬리를 무는 착잡하고 이상한 취임전야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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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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