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모든 것은 다 관계(relatedness:關係)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관계 안에서 태어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없었다면 자식은 태어날 수 없다. 자식이 또 시집 장가를 가서 부부와의 관계를 가짐으로 인해 손자가 태어난다. 이렇게 인류 종족보존의 법칙도 남과 여라는 관계 안에서 유지되고 이어진다.
그뿐이랴. 세상사 모두가 관계 속에서 시작되고 계속된다. 인류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의 가족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주체와 ‘너’라는 객체의 관계 속에서 태동된 사회는 단체와 집단, 국가를 이루며 서로간의 관계를 유지 보존하고 살아가게 된다.
관계를 다루는 관계신학이란 것도 있다. <나와 너>(Ich und Du)를 저술한 독일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관계가 ‘나와 너’(I and You)이어야지 ‘나와 그것’, 즉 ‘I and It’가 되면 이미 인격적인 관계는 깨지고 인간과 사물로서의 관계로 전락한다고 한다. 이를 확대 해석하게 되면 신과 인간의 관계까지도 적용된다.
부버가 말하는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 돌보며 헌신하고 활기를 주고받는 관계다. 나는 너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서로의 관계성을 추구한다. 나는 너와, 너와 나는 자유와 자율성을 존중하며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또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부버는 신(神), 즉 하나님(God)을 영원한 당신의 관계로 해석한다.
불교의 핵심사상중 하나에는 연기법, 혹은 연기론이란 게 있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직접적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 원인인 연(緣)의 관계를 통해 만물은 태어나고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연기론은 세상 만물이 다 연결돼 있다는, 즉 관계성을 갖고 있다는 사상이다. 그물같이 얽히고설킨 세상이란 거다.
연기설(緣起說)의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에 의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타(他), 즉 다른 것과 관계없이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상호 관련, 즉 관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세상은 거미줄처럼 모두 연관성, 내지는 연결이 돼 있다는 뜻이다.
우주 없이 태양이, 태양 없이 지구가 홀로 생겨나지는 못했을 것이고 지구의 기운 없이 인간이, 수많은 생물과 식물이 존재하지는 못했을 것은 우주와 인간, 삼라만상이 모두 관계성 안에서 태동되고 사라짐을 나타내준다. 현재의 자신이 존재함 역시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먼 조상과의 연결이 현실로 나타난 거라 말할 수 있겠다.
관계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너와 나 사이에 관계가 끊어져 있음은 내가 사람이 아니든지, 아님 너가 살아있질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반드시 생물과 생물 사이에서만 연결되는 고리는 아니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도 관계는 성립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이것은 샤머니즘을 비롯한 종교에서 나타난다.
부버가 말한 신(God)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영원한 당신이라 부를 수 있을 때 신은 인격적인 존재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기독신학에서의 신(God)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은 십자가사건에서 타나난다. 죄와 불복종으로 인해 멀어진 신과 인간을, 예수가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관계를 회복한 거다.
관계의 회복은 신과 인간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 부부문제, 고부문제, 부모 자식문제, 형제문제, 친구문제, 애인문제, 상사와 동료문제, 스승과 제자문제 등등. 어디 이뿐인가. 단체와 단체,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사이의 문제도 얽혀 있는 관계만 잘 회복하면 해결 될 수 있다.
관계는 사이에 있다.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다리(bridge)와 같다. 너(You)를 그것(It)이 아닌 너(You)라고 부를 때 다리는 놓여진다. 내가 존재함은 나를 있게 한 수없이 많은 인연(因緣)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사, 세상사, 인류가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사이에 헝클어진 관계의 회복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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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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