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수년간 나의 신년결의는 한결같이 체중감량이었다. “늙은 개도 강아지 재주를 익힐 수 있다”는 미국 격언을 믿고 매년 정초에 작심했지만 1월 한달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식탐이 많은 탓이다. 솔직히 나는 비만수준은 아니다. 표준보다 6~8 파운드 과체중이다. 지금보다 더 ‘통통’했던 청년 시절엔 “딱 보기 좋다”는 어머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올해 정유년의 신년결의는 체중감량이 아니다. 지키지도 못할뿐더러 이젠 내 나이에 걸맞지도 않다. 고희를 넘긴 노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도 뱃살을 빼서 건강증진을 꾀하기보다는 기존 건강상태를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 과속으로 치닫는 노화과정을 늦추는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근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몇몇 증상이 노화현상임을 안 것도 충격이었다.
발뒤꿈치 통증이 한 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따금 왼발 뒤꿈치가 찌르듯 아프다. 주말에 힘들게 등산하면서 장시간 걸은 탓인 줄로 알았는데 등산하지 않은 평일도 그랬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발바닥의 골격근육이 마모됐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런 증세에 시달리는 미국인이 연간 200여만 명이나 되며 대부분 과체중 노인이라고 했다.
키도 조금 줄어들었다. 평소 나와 키가 똑같았던 아들이 얼마 전 보니 나보다 커 보였다. 40 넘은 아들이 더 자랐을리 없다. 내 키가 줄어든 것이다. 30세부터 70세 사이에 남자 키는 평균 1.18인치, 여자 키는 무려 1.97인치나 줄어든다고 했다. 골다공증과 관계없이 척추마디의 연골이 닳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적인 노화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머리카락은 말할 것 없고 눈썹도 많이 빠졌다. 머리숱처럼 무성하지 않아서 뚜렷이 표가 난다. 팔다리의 모발도 술술 빠진다고 한다. 손등과 얼굴에 생기는 검버섯은 아직 없다. 하지만 청력은 확실히 떨어졌다. 왼쪽 귀가 더 뚜렷하다. 65~74세 노인들 중 3분의 1이, 75세 이상은 거의 절반이 청력 손실을 겪는다고 한다.
몇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왼쪽 손가락 하나가 뻐근하게 아프다. 그러다가 10분쯤 지나면 멀쩡하다. 관절염 초기증세다.
최근 안경점 검안사가 “괜찮아 보이지만 안과병원에 가서 백내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인 절반 이상이 80세가 되기 전에 백내장을 앓거나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눈이 더 침침해진 것 같았다.
더 고약한 게 있다. 눈 밑에 불룩 솟은 ‘아이 백’(눈 밑 비곗살)이다. 안경이 자꾸 얼굴 표면에 닿아 김이 서리는 통에 자세히 살펴봤더니 어느 틈에 아이 백이 징그러울 정도로 솟아 있었다. 작년 초까지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볼륨감 있던 뺨에도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 흔히 들어온 “젊어(나이보다 덜 늙어) 보인다”는 공치사도 지난 얘기가 됐다.
인터넷에서 늙음의 흔적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피부의 수분유지를 위해 물을 매일 8~10잔씩 마실 것, 정규적으로 운동해 신체조율을 높일 것, 이상적인 체중을 유지할 것, 적당량의 영양분을 섭취할 것,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할 것, 자주 씻을 것, 레티놀이 함유된 주름살 방지 로션을 바를 것, 햇볕을 쬐지 말 것, 짙은 화장을 피할 것 등 상식수준이다.
누구나 불로장생을 염원한다. 하지만 청소년 시기에 맹렬히 성장한 몸뚱이는 고령이 되면서 더 빠른 속도로 퇴화한다. 엊그제 이메일로 받은 고교동창생 송년파티 사진에선 한 녀석도 알아볼 수 없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으니 당연하다. 정유년의 붉은 수탉처럼 정정하라는 덕담을 받았지만 턱도 없다. 그 닭이 올해 365번 우는 동안 365번 쪼그라들 터이다.
노화현상 늦추기는 신년결의 아닌 신년희망이다. 시애틀타임스는 독자들이 새해에 희망하는 신문기사 제목들을 공모했다가 정초에 발표한다. 올해는 이색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개발 중단’이 포함됐다. 한국일보가 공모했더라도 낄만한 제목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박근혜 결국 사임’ 또는 ‘박근혜 탄핵 무효’ 따위의 대결장이 됐을 터이다. 공모 안 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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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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