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후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끌어 갈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된 국가다.
더 이상 공화당 대 민주당, 보수 대 진보가 정치적·이념적으로 맞서는 단순한 분열이 아니다. 1%와 99%가, 대도시와 농촌이, 백인과 소수민이, 기후변화 회의론자와 환경론자가 얼굴을 붉히며 대립한다. 학교의 화장실이 분열의 전쟁터로 변했고 남부국경이 싸움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서로 다른 인종과 성별, 종교와 민족이 뒤섞인 용광로가 너무 뜨겁게 끓다가 흘러넘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한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분열 체감도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무려 85%가 11월말 CNN 조사에서 주요이슈에 대한 분열이 너무 심화되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대선으로 한층 깊어진 분열에 상당수 미국인들이 “두 개의 다른 나라에서 사는 듯 느낀다”고 개탄할 정도다.
2017년 새해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조적이다.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46.1%는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며 ‘위대한 대통령’의 희망에 부풀어있고, 더 많은 표를 얻고도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48.2%는 ‘실패한 대통령’을 장담하며 두려움과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역사학자 줄리언 젤리저가 “희망의 해 혹은 두려움의 해?”로 예보한 2017년은 어쨌든 ‘역사적인 해’가 될 것만은 틀림없다. 튀는 스타일의 아웃사이더 대통령이 펼쳐갈 정치를 예측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트럼프관련 예측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는 이미 절감하고 있으니) 새로 들어오는 ‘최고의 공복’에 대한 기대치를 짚어볼 수는 있다.
새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최우선과제는 경제, 일자리다. 12월중순 USA투데이 조사에서 46%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대선의 핵심이슈는 무너지는 중산층이었다. ‘굿 올드 데이즈’에서 노조의 보호아래 누려온 베니핏은 줄어들고 교육과 의료비는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빈부격차의 심화를 목격하며 중산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빈곤층으로 추락할 자녀들의 내일이다.
5%의 극우파와 5%의 극좌파를 제외한 90%의 보통사람들은 정당과 이념에 관계없이 원하는 것이 비슷하다. 좋은 일자리와 단란한 가정, 그리고 동등한 기회와 존중…이 기본적 삶의 질이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이 수백만 유권자가 힐러리 아닌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라고 젤리저교수는 분석한다.
두 번째 과제는 대테러 작전을 비롯한 안보 확립이다. 미국의 대테러 정책 개편은 수 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미국은 아직 시원한 대책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 역시 강경 대응을 강조했을 뿐 구체적 방안은 내놓은 적이 없다. 콘서트나 공항에서 일반인, ‘소프트 타겟’을 대상으로 한 ‘외로운 늑대’의 테러위협 증가는 새 대통령에겐 또 하나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트럼프 캠페인에서 요란하게 부각되었던 국경장벽 쌓기와 불법이민 추방은 7%만이 우선과제로 꼽았지만 트럼프 지지자의 39%는 공약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무모한 장벽 쌓기와 많은 로컬정부 및 학계가 정면도전을 선언한 서류미비자 대규모추방에 대한 정치적·실용적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트럼프 집권기의 틀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오바마케어와 기후변화에서 외교정책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곳곳에서 시험대와 마주칠 것이다. 구체적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도 있다.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미 사회의 분열 해소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분열과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남북전쟁에서 민권운동에 이르기까지 미국도 여러 차례 겪으며 극복해왔다. 그러나 저절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덮고 악수하자는 맹목적인 낙관이 아니라 문제의 뿌리를 찾아 분열을 완화시키고 갈등을 풀어가는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
현재의 분열을 조장한 것은 트럼프의 캠페인이다. 마치 “요술램프를 문질러 거대한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이” 트럼프 자신이 소수민에 대한 극단적 막말과 비하를 공공연히 쏟아놓는 바람에 오랜 세월 끈질긴 노력으로 잠재워 온 편견과 차별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한번 나온 지니가 램프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듯이 이제 편견과 차별은 당당하게 표현되는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편견과 차별을 ‘선거전략’으로 묻어버리고 통치 모드로 돌아선다고 해서 선동적 캠페인으로 활성화된 분열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분열해소 능력에 대한 여론도 회의적이다. 갤럽조사에서 49%가 “분열을 더 초래할 것”이라고 답했다.
당선 후 두 달에 접어드는 현재,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란 팻말은 사라졌지만 트럼프에 대한 신뢰는 아직 의구심보다 낮고, 그의 입지는 여전히 아슬아슬해 보인다. 그러나 역대 모든 대통령들에게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국민 과반수가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가 ‘모두의 대통령’이란 시각에서 주요 사안을 해결할 결의를 다진다면 응원의 함성은 점점 커질 것이다.
깊은 양극화와 문화적 분열에 대응하는 것은 2008년 70%가 넘는 지지율로 출발했던 ‘변화와 희망의 기수’ 버락 오바마에게도 쉽지 않았다. 트럼프를 향해 “국민의 절반은 당신을 증오하고 워싱턴은 더 심한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미스터 프레지던트, 행운을 빈다”는 월스트릿저널의 격려에 동참하자. 그리고 트럼프의 새해가 머지않아 “두려움에서 희망으로” 변하기를…우리 자신의 행운도 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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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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