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깜빡이만 켜도 ‘알아서 척척’…모범운전자 느낌
현대차의 자율주행 하이브리드차 ‘아이오닉’
'안전하게 운전하는 모범운전사.'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현대자동차의 자율주행 하이브리드 '아이오닉'에 올라탔다.
현대차는 이날 전 세계 미디어들을 상대로 자율주행차 아이오닉 시승 행사를 열었다. 라스베이거스 중심부의 웨스트게이트 호텔 주변 4㎞ 구간을 한 바퀴 도는 행사였다.
아이오닉은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분류한 자율주행 기술의 단계에서 최상위 단계인 5단계의 바로 밑인 4단계 '고도(high) 자동화' 등급을 받은 자율주행차다.
SAE는 4단계 자율주행을 "운전자가 정해진 조건에서 운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시스템은 정해진 조건 내 모든 상황에서 차량의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는 등 적극적인 주행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보다 높은 5단계 '완전(full) 자동화'는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목적지까지 운행하고 주차하며, 운전자가 타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단계"로 정의된다.
아이오닉은 상용화를 겨냥해 자율주행차용 카메라나 라이다(레이저 레이더를 발사해 사물의 거리와 속도, 형상 등을 파악하는 장치), 센서 등을 모두 내장화했다. 그 덕분에 외견상 일반 자동차와 별 차이가 없다.
특히 라이다나 카메라는 양산을 고려해 고가의 제품 대신 보급형 장비들을 채용했다. 고가 장비를 쓸 경우 완성차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범퍼 하단의 중앙과 좌우에 3개의 양산형 라이다가, 차량 내 룸미러 옆에 4개의 카메라가 장착됐다. 이들 카메라 중 일부는 신호등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른 일부는 그 신호등의 색상을 읽는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하이브리드차 ‘아이오닉’
자율주행 아이오닉을 개발한 한지형 현대차 책임연구원과 기자단이 함께 차에 올라탔다. 행사 장소인 호텔에서 일반 도로까지 나가는 구간에서는 한 연구원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한 연구원은 "자율주행은 내장된 정밀지도를 바탕으로 GPS(위성항법장치)와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해 차가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판단해 이뤄진다"며 "호텔 내 도로 같은 사유지는 지도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도로로 나서자 자율주행차의 진가가 발휘됐다. 앞이 탁 트인 도로에 나서자 차는 가속을 시작했다. 카메라가 읽어들인 현재 도로의 제한속도(speed limit)가 운전석 옆 디스플레이에 떴다.
한 연구원은 "차가 알아서 제한속도 이상으로는 가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빨간 신호등이 켜진 교차로에서는 서서히 감속하며 멈췄다. 운전석 옆 디스플레이에는 사람 모양 아이콘이나 차 형태의 아이콘이 잠시 떴다가 사라지곤 했다.
전방에 사람이나 차가 있다는 걸 센서가 인식했다는 의미였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 코너에 근접하자 차가 알아서 감속하더니 우회전을 했다. 그렇게 오른쪽으로 돌자 바로 전방에 공사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한 연구원이 재빨리 왼쪽 방향지시등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차의 운전대가 저절로 움직여 왼쪽 차로로 1개 차선을 이동했다.
한 연구원은 "보통 앞에 공사 현장이 있으면 알아서 차선을 변경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깜빡이를 켰다"며 "이런 운전자의 개입을 (자율주행차와의) '협업'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서 갑자기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차량이 시승차 앞을 가로질러 중앙선 반대편 도로로 합류한 것이다.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웨스트게이트 호텔 주변 도로에서 운전자가 손을 놓은 상태에서도 자율주행차 아이오닉이 도로를 알아서 주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아이오닉의 감속은 재빨랐다. 차가 튀어나온다고 탑승자들이 생각하는 순간 감속에 들어갔다. 감속이 늦었다면 '혹시 충돌하나' 싶어 불안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길이 'S'자 형태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구간이 나왔다. 이번에도 아이오닉은 능수능란하게 굽은 도로의 형태를 따라 차선을 지키며 안정적으로 운전했다. 특히 차선이나 중앙선이 대부분 지워진 구간인데도 그랬다.
한 연구원은 "모든 도로에 차선만 뚜렷해도 자율주행 구현이 한결 쉬울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 도로는 차선이 지워진 곳도 많기 때문에 연석이나 각종 지형지물을 감지하고 인식해 도로의 형태를 파악하고 자율주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습 정체 구간에서는 앞 도로가 뻥 뚫렸는데도 제한속도까지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언제 갑자기 차가 나타날지 몰라 스스로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것이라고 한 연구원은 설명했다.
4㎞ 구간 시승은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중간에 깜빡이를 한두 차례 넣은 것을 빼고는 단 한 번도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차가 스스로 주행했다. 하지만 감속이 늦거나 신호 판독, 장애물 인식 등을 제대로 못 해 불안하다는 느낌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외려 제한속도를 철저히 지키며 '안전운전'하는 모범운전사의 차를 탄 느낌이었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는 기술 시연이 까다로운 라스베이거스의 복잡한 대도심에서의 야간 자율주행에도 성공했다.
야간 자율주행은 주변 조명이 어두워 센서가 사람과 자동차, 사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 뿐 아니라 각종 불빛에 차선, 신호등이 반사되므로 인식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기술력을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게다가 CES 기간 라스베이거스 도심은 늦은 밤까지 차가 막힐 정도로 복잡해 자율주행차 시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이어서, 시연에 나선 업체는 현대차 외에 거의 없었다.
현대차는 고성능 레이다 센서, 사물 인식 카메라, GPS 안테나, 고해상도 맵핑 데이터 기술 등을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에 적용해 완벽에 가까운 자율주행 기술 구현을 선보였다.
현대차는 2020년 자율주행 아이오닉을 상용화해 판매할 계획이다.
현대차 야간 자율주행 시연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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