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 동안 세상에는 온갖 사건들이 벌어졌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뭘까. 미국인들은 2001년 일어난 9/11 테러를 들 것이다. 미 본토에서 수 천 명의 민간인이 외국 공격으로 숨진 것은 처음인데다 이것이 촉발시킨 테러와의 전쟁이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천만명이 죽은 제1, 2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들 전쟁은 사망자의 규모가 만 배 단위로 차가 나는데다 그 결과 세계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놨다.
1929년 월가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수천만명이 극빈자로 전락하고 그 여파가 세계에 미쳤지만 이로 인한 사망자 수나 영향이라는 점에서 세계대전에는 못 미친다.
역사적 중요성에서 이들 전쟁을 능가할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1917년 10월 26일 볼셰비키가 산트 페테르스부르크의 겨울 궁전을 접수하면서 시작된 러시아 혁명일 것이다. 그 후 수년에 걸친 내전에서 승리한 볼셰비키는 나라 이름을 소련으로 바꾸고 구 러시아 제국 전역을 장악한 것은 물론 온 세계를 상대로 공산혁명 수출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인구 세계 최대인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되고 1959년 쿠바, 1975년 베트남 등 세계 육지의 1/3이 공산 물결에 뒤덮였다. 러시아 혁명이 없었다면 한반도 반쪽이 공산화되고 한민족이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또 인류 역사상 처음 소수의 지식인이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이 아사하고 수많은 정치범이 처형됐다.
착취와 억압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빈곤의 평등’만을 실현한 채 모든 국민이 공산 압제에 신음하는 생지옥 건설로 끝났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무너지고 소련 자체도 1991년 말 해체되기에 이른다.
1917년 탄생해 1991년 사망한 소련 체제의 성립과 몰락은 지난 100년간 일어난 최대 사건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것이다. 지난 300년 동안 이와 맞먹는 파급력을 가진 사건은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밖에 없다. 올해는 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다.
또 올해는 당시 그 사건이 준 충격과 영향력에 있어 러시아 혁명과 조금도 뒤지지 않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해다. 1517년 10월 31일 당시 33살의 젊은 신학자였던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해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음’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95개 조항의 성명서를 못으로 박아 붙였다.
이렇게 촉발된 종교개혁은 그 후 수백 년 동안 유럽을 종교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으며 유럽 역사를 종교개혁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을 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1568년 스페인의 통치에 저항해 들고 일어난 네덜란드 독립전쟁도 근본적으로 신구교 간의 종교전쟁이었고 1588년 스페인 무적 함대가 영국을 치러 갔다 침몰한 것도 네덜란드를 돕는 신교 영국을 혼내 주려다 벌어진 일이다.
종교개혁은 구원의 문제를 교황과 교회라는 중간 매개체를 배제하고 신과 인간의 문제로 바꿈으로써 서구 개인주의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구원받는 인간의 징표로 근면과 성실, 검소를 내세움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한 네덜란드와 영국, 북독일 등은 예외 없이 신교가 집권한 나라들이다.
종교개혁은 미국 건국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 머리 속에는 종교적 탄압을 피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교분리의 원칙 하에 종교의 정치 관여를 엄격히 금지한 것은 종교가 정치에 개입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몸소 생생히 체험한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쁜 하루하루 일상에 묻혀 역사의 흐름을 잊고 살아가지만 역사적 사건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은 역사 속 나의 의미를 한번쯤 돌아볼 좋은 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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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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