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 언론매체들이 챙기는 단골메뉴가 있다. ‘올해의 10대(Top Ten) 뉴스’다. 미국 언론들은 보나마나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기적 같은 대통령 당선을 첫번째로 꼽을 터이다. 이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트럼프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올해의 10대 영화’도 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가 톱이다. ‘올해의 10대 노래’도, ‘10대 발명품’도 있다.
대부분의 한인들에겐 생소하지만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도 있다. 각국의 대표적 사전전문 출판사들이 해마다 연말에 선정해 발표한다. 그해 영향력이 가장 컸거나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 또는 그해의 세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들 가운데서 선정된다. 10대 뉴스나 10대 영화 따위와 달리 딱 한 개만 선정돼 더욱 ‘권위’가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트루스’(post-truth, 탈 진실)를 올해의 단어로 정했다.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기보다 주관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몰이에 더 유리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지난 6월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7월의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확정을 계기로 올해 사용빈도가 작년보다 20배나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옥스퍼드 사전은 브렉시트 옹호자를 뜻하는 ‘브렉시티어’와 미국 대선과정에서 부각된 ‘알트 라이트(alt-right, 대안 우파)’ 및 덴마크 식 웰빙 라이프를 뜻하는 ‘히게(hygge)’ 등이 올해의 단어 자리를 놓고 경합했다고 밝혔다. 브렉시트를 저울질했던 독일의 독일어협회는 결국 포스트-트루스와 같은 의미인 ‘포스트팍티쉬(postfaktisc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지난 2013년의 신조어인 브렉시트를 올해의 단어로 꼽은 건 영국 최대 사전출판사인 콜린스다. 올해 사용빈도가 3년 전보다 3,400%나 늘어났다고 했다.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의미의 파생어인 ‘브레그렛(Bregret)’도 등장했다.
콜린스 사전은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쏟아낸 기상천외한 발언들을 빗댄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신조어도 소개했다.
영국의 또 다른 권위사전인 메리엄-웹스터가 선택한 올해의 단어는 ‘서리얼’(surreal, 초현실적)이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지칭한다. 웹스터는 이 단어의 조회 수가 브뤼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3월과 7월, 팝스타 프린스가 사망한 4월, 프랑스 니스에서 트럭 테러가 발생한 7월 및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11월에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사전들과 달리 미국 온라인 사전 사이트인 딕셔너리 닷컴은 ‘제노포비아(xenophobia)’를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외국인 또는 다른 문화권 출신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뜻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과격 무슬림단체의 잇따른 테러, 유럽 각국으로 쇄도한 시리아 난민, 특히 트럼프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반 이민정책 등이 제노포비아의 근저를 이뤘다고 했다.
호주 국정사전이 꼽은 올해의 단어는 생뚱맞게 ‘민주주의 소시지(democracy sausage)’다. 모금단체들이 선거 날을 대목으로 잡고 투표소에 장사진을 이룬 유권자들에게 파는 핫도그 샌드위치다.
원래 2012년의 신조어지만 올해 7월 총선에서 빌 쇼튼 야당당수가 소시지 중간을 입에 물고 “민주주의 맛이야!”라고 말한 데서 힘을 받아 올해의 단어로 등극했다.
올해의 단어에는 끼지 못했지만 금년 한해 인구에 회자된 신조어들도 많다. 청년들이 특히 즐겨 먹는 햄버거, 핫도그 등을 지칭하는 ‘듀드 푸드(dude food),’ 밀레니얼 세대보다 유약한 2010년대 젊은이들을 풍자한 ‘눈송이 세대(snowflake generation),’ 모바일 기술을 기반으로 등장한 유사 택시 서비스 ‘우버’에서 파생된 ‘우버라이제이션(uberization)’ 등이다.
한국어 사전이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다면 아마도 ‘탄핵,’ ‘하야,’ ‘촛불,’ ‘분당,’ ‘종북,’ ‘좌빨’ 등이 경합을 벌일 듯하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홍수를 이룬 올해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포스트-트루스’와 ‘서리얼’이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낄끼빠빠’(낄데 끼고 빠질데 빠진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올해 신조어를 정치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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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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