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한 부부생활의 디톡스 역할 필요
▶ 오랜 행복 위해 잠시 갖는 혼자만의 시간, 도피 아닌 에너지 충전후 다시 일상복귀
영원히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결혼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결혼 안식년’을 아시나요. 일정 기간 배우자와 떨어져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영원히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둘 사이의 치명적 오류에 숨구멍을 내주는, 100세 시대의 긴 결혼생활을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묘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단 결혼안식년은 쌍방의 합의와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며 반드시 배우자에게 돌아온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또 결혼안식년이 부부의 근본적 갈등과 문제를 잠시 회피하기 위한 것일 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 안식년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본다.
▶배우자 없는 시간이 필요
오늘날 결혼이라는 제도가 위기에 처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한 사람과 해로하기엔 인간의 수명이 극적으로 길어졌고 가부장제적 억압을 더 이상 디폴트값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은 여성 인권도 향상됐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일평생 모든 것을 함께한다는 결혼제도의 가정 자체가 오류다. 황혼 이혼율 증가와 젊은 세대의 결혼 기피, 졸혼에 대한 관심 고조 등은모두 결혼제도의 약자인 여성이 견인하고 있지만, 반드시 여성만 결혼안식년의 필요를 느끼는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혼안식년이라고 해서 꼭 연간 단위의 별거를 일컫지는 않는다. 전문가에 따라 의견은 갈리지만 영어권에서 ‘결혼안식기(marriage sabbatical)’라 부르는 일시적 별거는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기혼자의 나홀로 여행을 통해이 경향을 대략적으로 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한 여행사에 따르면 40대 이상의 기혼자 중 혼자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매년 1월부터 11월까지 배우자를 두고 혼자 여행을 떠난 40대 이상의 여행객 수는 2014년 7,100여명, 2015년 9,800여명에서 올해는 1만 2,000여명으로 대거 늘었다.
2년 사이 69%나 증가한 수치다. 이중 남성은 2014년 67.1%, 2015년 64.5%, 올해 62%였으며,여성은 2014년 32.9%, 2015년 35.5%, 올해 38%였다. 업계 관계자는 “기혼자의 나홀로 여행은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정도 많지만, 여성의 비중이 매년 늘어나는 증가세를 보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여성, 특히 그 중에서도 전업주부가 결혼안식년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은‘ 주 7일, 24시간’ , 연휴나 휴가도 없는 상시 근무체제라는 노동환경 때문이다. 아무리 혹독한 근무 조건의 노동자도 주말과 명절 연휴의 일부는 보장 받는 세상이 됐지만, 전업주부는 여전히 ‘어차피 집에서 노는 것 아니냐’는 시대에 뒤떨어진 세간의 인식과 더불어 자아상실이라는 정체성 위기를 겪는다.
▶ 일상으로부터 분리
미국 언론인 셰릴 자비스의‘ 결혼안식년: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은 결혼안식기간을 가졌던 55명의 여성과 그들의 배우자 일부를 인터뷰한 책이다. 30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일주일 이상 남편과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저자는 50대에 3개월간의 안식기간을 갖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55명의 여성은 각기 독서에 몰입하기 위해 6개월, 유럽에서 공부하거나 가르치기 위해 여름 몇 개월, 평생의 꿈이었던 평화봉사단이 되기 위해 2년 등의 결혼안식기를 가졌다.
공통점은 이혼 전 별거와 달리 반드시 배우자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자비스는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결혼안식년은 반드시 결혼 안에서의 안식년이어야 하며, 관계로부터의 안식이라기보다 루틴한 일상으로부터의 분리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혼안식년의 목표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리프레시 되어 결혼제도로 복귀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결혼안식년이 아이디어로서는 매우 탁월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죄책감과 두려움이다.
책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안식 기간이 짧고 가까운 곳으로 떠난 사람들이 오랫동안 멀리 떠난 사람보다 더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안식년을 가진 남성은 대부분 죄책감보다는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저자는 이를 “여성들은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혼안식년의 장점은 분명하다. 남편 및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되찾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에 요긴하다.
부재는 갈망의 최대 원인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사물로서 존재하던 배우자를 다시 한번 욕망의 대상으로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극단적인 스트레스와 갈등으로부터 휴지기를 가짐으로써 자신을 치유하고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점을 얻을 수 있다.
▶ 단순한 갈등 회피ㆍ유보는 금물
결혼안식년이 모두에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쌍방의 합의 없는 배우자 일방의 이기적 행태이거나 가족-특히 자녀-을 유기했다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자기계발에 그칠 수도 있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주기적으로 짧은 휴가를 가는 것과 장기적으로 안식년을 갖는 것은 결코같을 수 없다면서 후자는 결국 이혼으로 가는 우회로라고 반대하기도 한다.
특히 결혼 기간이 짧은 부부는 상호이해의 토대가 두텁지 않아 결별로 끝날 가능성이 높으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원리에 따라 새로운 욕망의 대상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이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부사이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없다면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한시적으로 덮어두는 회피일 경우 함께 소통하고 갈등을 해결할 기회를 상실한 채 문제상황을 유예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심리치료전문가 프란 월피시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 결혼안식년보다는 규칙적인 짧은 휴가가 훨씬 더 위기의 결혼생활을 구원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일주일에 특정 시간은 부부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일종의 부부생활 디톡스인 셈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풀타임 배우자로 일평생
100세 시대의 긴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결혼안식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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