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직장 동료는 간밤 쪽잠을 잤다고 했다. 트럼프가 당선 되었으니 이제 집밖에 벽이 세워져 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7살짜리 딸아이가 밤새워 대성통곡을 했단다.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사촌은 지난 11월9일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로서도, 한 시민으로서도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운 하루였다고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등교하던 아이가 곧 추방을 당할 것이라며 울음을 터뜨렸고, 조만간 3차 대전이 일어나 모두가 죽을 것이라며 겁에 질려있던 아이의 곁에는, 트럼프의 이름을 큰 소리로 내뱉으면 잡혀간다며 쉬쉬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트럼프의 당선이 실제로 많은 어린이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 합법적 신분을 갈망하는 체류자, 자립이 점점 힘들어지는 저소득층,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특정 종교인, 그리고 헌법에 위배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던 당선자의 연설에 귀를 의심했던 법조인에게도 앞으로의 4년은 예측불허의 두려움일 수 있다.
당선과 동시에 수만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가오는 권력 앞에 시민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단결력이었다. 안타깝게도 시위라는 것은, 취지는 아름다우나 한발이 늦은 선택인 경우가 많다. 사실 원치 않는 정권교체는 결정되기 전에 투표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호소하는 것은 총선의 정당성에 던지는 의문도 아니었고, 트럼프를 향한 단순한 적대감도 아니었다. 거리를 떠도는 팻말들은 새 정권의 위협과 핍박에도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민권운동에 더 가까웠다.
대선 직후 트럼프의 행보가 유순해진 듯한 것을 감안한다면, 아직 좌절하기는 이르다. 그렇지만 정치적 경력이 전무한 그가 앞으로 대통령으로서 어떤 신개념의 면모를 보여줄지 기대 반, 걱정 태산인 세계는 긴장을 늦추기 힘들다.
미국이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의 장을 열고 세계와 교류했기 때문이었고, 세계의 질서를 담당하는 자리에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인이 함께 모여 성장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성공을 희망할 수 있는 ‘기회’의 다리였지 출입과 존재가 거절되는 철벽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파시스트 성향의 통치자로 돌변한다면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 아이러니 하다. 마음의 잣대를 버리고 이웃도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익숙해야 할 국민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대립감을 조성하며 장애인과 노약자에 대한 비하도 거침없이 하는 한 후보에게 ‘보수파’라는 이유만으로 표를 던졌고, 극대화된 자유를 갈구하던 밀레니얼 세대는 투표 행사권한을 스스로 포기하는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한 나라 대통령의 수준이 딱 국민평균의 수준이라는데, 결국 그의 당선을 도와준 셈이 된 참정권 포기 유권자들이 원했던 것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무대포 식의 공약들과 천지개벽이었을까?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는 것 이상의 심각한 문제는 민심의 변질과 분열이다. 자신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을 헐뜯고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다. 이기적인 신념과 국가를 위한 진정한 이상향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벌어지는 언쟁들은 키우지 말고 잠재워야 한다.
자연재해 앞에서, 생명의 순리 앞에서 사실 인류는 하나다. 이 세상은 결코 제한된 한 집단으로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고립된 국가로서 발전하고 지탱할 수 없으며, 결국 평화를 향한 원초적인 해결책은 화합이라는 것을 역사는 수백 번 증명했다.
생소한 성향의 정권, 앞으로 길게는 8년 간의 시련이 될 수도 있고, 꽃길이 펼쳐질 수도 있다. 변화를 꿈꾼다면 우리 아이들뿐만이 아닌 우리 자신의 지성과 인성 교육에 힘써 열린 마음과 열린 사상을 키워야 한다. 그 어떤 독재정책이 인종, 성별, 국가, 종교, 계급 사이에 벽을 쌓아도 서로 간의 신뢰, 연민 그리고 최소한의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면 민주국가의 국민은 함께 뭉쳐 버텨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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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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