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해 본다. 아무리 악인(惡人)이라도 단 한 번은 착한 일을 했을 거 같다. 연말연시를 맞으며, 특히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이 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은 둘째 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착한일, 좋은 일을 얼마나 했는지...
신약성경(New Testament) 마태복음 6장 3절에서 4절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너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며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하게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말에는 남을 구제, 착한 일을 하려면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
지난 달 9일, 인천 동구 주민행복센터에 쇼핑백을 들고 찾아간 30대의 남자. 담당직원은 백을 열어보고 기겁을 했다. 5만 원 권이 수북하게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5,000만원. 백을 맡긴 남자는 전화번호와 주소도 안 남기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달라고 말한 후 달랑 ‘김달봉’이란 이름만 주고는 사라졌다.
지난 달 21일, 인천 남동구청 복지정책과. 김달봉씨는 또 5,000만원이 든 가방을 건넸다. 구청직원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니 조용히 전달하고 싶다며 누군가가 부탁해 온 것이라 말하곤 사라졌다. 지난 12월12일, 김달봉씨는 심부름이라며 인천 부평구청을 찾아가 5,000만원을 또 기부했다. 총 액수 1억5,000만원이 기부됐다.
이 같은 기부가 계속되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세 곳에서 남긴 이름인 김달봉이란 필체가 똑 같다며 김달봉씨를 찾고 있으나 전혀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1억5,000만원이면 미화로 약 14만 달러에 달한다. 김달봉씨가 본인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심부름을 한 자인지는 모르지만 기부자는 얼굴 없는 천사임엔 분명하다.
2010년 크리스마스. 일본 마에바시 시의 아동상담소 출입구에 란도셀(등에 메는 책가방) 열 개가 들어 있는 종이가방이 놓여 있고 가방에는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간단한 글과 ‘다테 나오토’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테 나오토는 프로 레슬링 만화속에 나오는 타이거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보육원 출신의 기부천사로 묘사돼 있다.
이 미담이 언론에 알려지자 일본 전역에서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아동시설 등에 책가방과 생활용품, 쌀, 식품, 현금을 보내기 시작해 1,000건이 넘게 됐다. 지난 12월8일, 일본 방송 NHK는 동경에서 열린 프로레슬러 스타 초대석에서 타이거 마스크의 주인공을 전격 공개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 가와무라 마사타케(43)였다.
기부란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닌가보다. 가와무라가 한 것처럼 아주 작은 기부라도 그것이 씨앗이 되니 1,000명이 함께하는 큰 도움으로 커진 거다. 이란 왕실의 주치의였던 한의사 이영림(75)원장이 모교인 경희대학교에 자신의 재산 1,300억 원을 기증하는 약정식을 지난 16일 가졌다. 모교를 위해 기부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이영림원장처럼 부동산을 포함한 자신의 재산 전부를 기증하는 건 드물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건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일 게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려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자 본능의 한 면이다. 하지만 본능을 넘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 아니던가.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아니, 행복한 사람이다. 엊그제 한인마켓에 들렸을 때 구세군 자선냄비에 작은 것이었지만 한 푼이라도 나눔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금년엔 모두가 어려운지 예년에 비해 자선냄비모금이 3분의1도 되고 있지 않다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각박하고 인색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일 수록 김달봉같은 사람, 얼굴 없는 천사들이 많이 나와 세상을 훈훈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 가와무라, 이영림원장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리스마스, 먹고 마시는 날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얼굴 없는 천사가 되어 지는 날이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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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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