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도스도엡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아버지께 남자들은 창녀나 호스테스에게 구원의 여성상 같은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사회 밑바닥에도 숭고한 사람이 있고 엘리트 중에도 탐욕스럽고 비열한 자가 있는 거란다’ 하셨다. 당시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적이고 세련된 상류층 환경에서 어떻게 거칠고 비열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단 말인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번 한국에 갔다가 헌책방을 돌며 눈에 띄는대로 책을 사왔다. 그중에 잭 런던의 단편중에서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생애에 대해 쓴 글이 있었다.
‘나는 노동자계급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열정, 야망, 이상에 눈을 떴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의 환경은 문제투성이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인생 체험은 비참했다. 상류층을 동경하던 그는 그곳엔 이타적인 정신, 숭고한 사고, 지적인 삶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속의 몇몇 악한 빼곤 상류층의 모든 것은 맑고 고귀하고 품위있고 고생과 불행을 보상해 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속해 있던 사회의 지하실은 잔인하고 비참했다.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결국 산다는 건 끼니와 주거의 문제였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끼니와 주거를 위해 물건을 파는데 상인은 구두를 팔고 정치인은 인격을 팔고 민중의 대변인은 신용을 팔고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 명예를 팔았다. 여자들도 결혼을 한 몸이거나 말거나 육체를 쉽게 팔았다. 노동자는 팔것이 근육밖에 없었고 그건 팔수록 고갈되어 밑바닥에서 비참하게 죽는 일밖에 없었다.
인간의 뇌도 하나의 상품이란 걸 알게 된 그는 뇌는 늙을수록 높은 가격에 팔림을 알고 뇌를 팔기로 했다. 미친듯이 공부를 해 드디어 그도 사회의 응접실에 들어갈수 있었고 빠르게 환멸을 느꼈다. 이 사회의 주인들, 그들의 부인들과 딸들과 저녁 식사를 했고 놀랍게도 그들은 사회 밑바닥에서 자신이 알던 여자들과 한치도 다를 바 없었다. 한꺼풀 벗기면, 즉 예쁜 드레스만 아니면 같은 여자였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듣기 좋은 이상과 도덕을 재재거리는데 그렇게 재잘거려도 그들의 삶을 주도하는 열쇠는 결국 물질이고 그들의 감성은 이기심이었다. 자선을 하고 그 사실을 홍보하며 그러나 그들의 음식과 옷은 착취와 매춘으로 얼룩진 배당금에서 나온다. 그러면서 그들은 밑바닥 삶의 원인은 오로지 절약 정신 부족, 무지, 과음, 선천적 게으름에 있다고 철저히 믿고 마음 편안해 한다.
그는 깨끗하고 고결하고 생동적인 이상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상류층에 있는 정치자, 사업가, 교수, 편집지들 사이를 돌아다녔는데 간혹 깨끗하고 고결한 사람들도 만나기는 했지만 그들에겐 생동감이 없었다. 부패하게 살지는 않지만 깨끗한 미라같았다. 맹목적 지성을 열정없이 추구하며 타락한 대학에 부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교수들이었다.
전쟁을 반대해 평화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는 이가 자기 공장의 파업 노동자들을 쏴 죽이게 하고 권투의 무자비함에는 분개하면서 불량 식품을 만들어 수많은 아이들을 죽이는 건 아랑곳하지 않기도 한다. 게다가 산업계 지도자들은 지성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다만 사업에 관한 지성은 대단히 발달돼 있다. 그리고 사업과 관련된 일을 할 땐 도덕성은 팽개친다.
런던은 자신이 사회의 응접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노동자계급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사다리를 오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이기주의, 물질주의를 쓰러뜨리고 사회의 지하실을 정화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응접실 같은 것도 없고 모든 방이 밝고 맑고 깨끗한 곳이 되기를 염원했고 인간의 숭고함을 믿으며 친절과 이타심이 상스러운 탐욕을 이길 것을 믿었다. 그의 마지막 믿음은 노동자계급에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간디의 말, 노동 없는 재물은 썩은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떤 프랑스 사람이 말했단다. 시대의 계단은 올라가는 나막신과 내려오는 구두 소리로 늘 쿵쿵거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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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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