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내각 인선의 최종 결정권자는, 엄밀히 말해 대통령이 아니다. 연방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인선에 대한 ‘자문과 동의’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전통적으로 상원은 자신의 핵심 팀을 꾸리는 새 대통령을 존중해 대부분의 지명을 무난히 인준해 왔다. 200여년 미 역사에서 인준을 거부당한 내각 지명자는 9명뿐이었다.
가장 최근의 예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존 타워 상원의원의 탈락이었다. 폭음습관과 여성편력에 군수비리에까지 얽혔던 타워는 24년을 몸담아온 자신의 친정에서 53대47로 내각 지명자 인준을 거부당한 사상 첫 연방상원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인준 청문회를 전후해 자진사퇴나 지명철회 등으로 낙마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1기의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가 불법체류자를 유모로 고용하고 소셜시큐리티 세금을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하차한 여성 변호사 조 베어드의 ‘내니 게이트’에서 ‘깨끗한 정부’를 표방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보건복지장관에 낙점된 탐 대슐 상원의원이 탈세사례 노출 후 자진 사퇴한 ‘택스 게이트’까지 10여건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새 내각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 되었다. 일부는 예상되었던 얼굴로, 일부는 예측불허 트럼프의 선택답게 의외의 뉴페이스로 채워졌다. 상당수가 ‘부유하고, 과격하며 정치적 경험이 없는’ 그 자신과 비슷한 그의 내각엔 별명도 많다. 자산합계 140억 달러의 초갑부들이 대거 포진된 ‘억만장자 내각’, 강경파 퇴역장성들이 많아 군부독재에 빗댄 ‘훈타 내각’, 경제라인을 장악한 ‘골드만삭스 내각’, 그리고 트럼프의 트레이드마크인 ‘아웃사이더 행정부’…포퓰리즘 물결에 편승한 당선인의 내각과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들이 말해주듯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기세다.
정치적·이념적 시각에 따라 평가는 상반된다. 각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새 리더들이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듯 워싱턴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공화당 보수진영의 긍정적 반응에도 일리가 있고, 불 보듯 뻔한 이해상충의 위험과 일부의 자질부족을 우려하는 민주당 진보진영의 지적도 틀리지 않는다.
이 같은 장단점을 짚어가는 인준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기 위해, 공무수행에 치명적인 결격사유를 걸러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철저한 검증이다. 지명자 전원은 예외 없이 연방법에 의해 자신의 재정상황을 전면 공개하고 지난 15년에 대해 FBI의 신원조사를 받아야 한다. 거기에 더해 가혹할 만큼 철저한 상원의 자체조사 과정도 이어진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의 정권인수팀은 몇 주, 몇 달에 걸쳐 자체조사를 통해 미리 검증에 주력해왔다. ‘즉흥적 결정’을 선호하는 트럼프의 인수팀은 어땠을까. 최소한 가장 중요한 인선으로 꼽히는 국무장관 지명자에 대한 검증은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무장관 지명 뒷이야기를 탐사보도한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 정적이었던 미트 롬니도, 72세로 스태미나가 소진된 루디 줄리아니도 마땅치 않아 망설이는 트럼프에게 ‘우연히’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 렉스 틸러슨을 추천한 것은 12월2일이었고, 트럼프가 틸러슨을 처음 만난 것이 6일, 지명을 결정한 것이 10일 전후, 발표한 것이 13일이다. 첫 만남에서 발표까지의 1주일 남짓은 ‘철저한 검증’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기간이다.
인준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탁월한 국제적 기업가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미국의 외교방향과는 엇나가는 친러시아 성향의 틸러슨에 대해선 민주당 뿐 아니라 이미 공화당 중진들도 노골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순탄치 못한 인준이 예상되는 지명자는 틸러슨 만이 아니다.
오바마 집권 8년 내내 공화당의 인준 방해에 시달려온 민주당의 시각으로 보면 ‘치명적 흠집’을 가진 지명자가 수두룩하다. 특히 경험부족을 넘어 자신이 이끌어갈 해당부처 자체와 그 주요 사명에 반대하며 적대관계를 형성해온 상당수 지명자를 타겟으로 민주당은 대대적인 인준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최저임금인상과 오버타임 수당을 반대하고 근로자를 로봇으로 대체하기 원하면서 노동법을 수없이 위반해온 패스트푸드 체인기업 최고경영자 앤디 퍼즈더를 노동장관에, 대선후보 시절 에너지부 폐지를 공약했던 릭 페리를 에너지장관에, 환경보호청 상대 소송을 예닐곱 차례나 제기했던 스캇 프루이트를 환경보호청장에, 공립교육보다 사교육을 선호하는 억만장자 벳시 디보스를 교육장관에, 인종차별 발언으로 연방판사 인준을 거부당했던 반이민 강경론자 제프 세션스를 법무장관에, 오바마케어 폐지는 물론 메디케어 민영화를 지지하는 톰 프라이스를 보건복지장관에…지명한 트럼프 인선의 후폭풍이다.
제각기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해당부처의 전면개혁이라는 과제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들은, 그러나 단순과반수 찬성으로 인준받을 수 있으니 52대48로 공화당이 우세한 새 상원에서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낙마시키지 못 한다.
낙마의 빌미는 정책보다는 개인의 흠집, 특히 재정비리다. 보통사람보다는 부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어서 억만장자 내각에 경고등이 켜진 셈인데 우려와 반대가 시끌시끌해도 트럼프는 완강하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워싱턴 3부를 장악하게 된 공화당이 모멘텀 약화와 기회상실을 우려해 민주당의 거부에 가담하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트럼프 ‘도박’의 성공여부는 앞으로 몇 달 후면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러나 ‘부유층에 유리하게 조작된’ 불공정한 경제체제에 분노한 근로계층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꾸린 ‘억만장자 내각’의 성공여부를 알려면 최소한 4년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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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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