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선이 한창이던 4년 전 하프타임에 ‘속지말자 화보 정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이미지의 기만성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이미지에 속아 잘못된 후보를 찍는 일만은 피하자는 간곡한 호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권자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
‘화보 정치’는 ‘이미지 정치’의 다른 표현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이고 어떤 콘텐츠를 갖고 있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비춰지느냐가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보다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가 되면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을 방문하거나 서민들을 찾아 조금은 가식적인 미소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다.
미디어 정치 시대에 이미지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해도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데는 관심도 없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이것으로만 정치를 하려는 것은 일종의 사기에 가까운 행위라 봐도 된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이런 정치인들에게 무수히 속아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박근혜이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 그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자 수많은 국민들은 “속았다”며 장탄식을 토해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대중의 관심에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이미지 메이킹 스킬과 언론의 침묵, 그리고 일부 유권자들의 눈을 멀게 한 부친 박정희의 후광 등이 오랜 시간에 걸친 이런 이미지 사기극을 가능케 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한 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빠지다 보면 중독으로 이어진다. 박근혜의 이미지 정치는 하나의 테크닉이나 수단의 차원을 넘어 정치행위의 전부가 돼 버렸다. 박근혜의 정치는 이미지로 시작해 이미지로 끝났다.
탄핵이 본격화 되던 시점 대구 서문시장에 큰 불이 나 700개에 가까운 점포가 탔다. 대참사였다. 청와대에 있던 박근혜는 화재 현장으로 내려갔다. 화마로 순식간에 생업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면 박근혜의 방문을 누구도 욕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을 방문한 대통령은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10여분 간 현장을 둘러본 후 피해 상인들과는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그냥 돌아온 것이다. 상인들은 분노했다. 왜 현장을 찾았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 본능이 발동해 반사적으로 현장에 간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이런 의심을 합리적 추론으로 만들어 준 것은 뒤이어 나온 보도였다. 세월호 당일 오후 수백명의 아이들이 갇힌 배가 차가운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을 즈음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머리손질을 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재난상황에서 대통령은 카메라에 비칠 자신의 모습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의 최종 책임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망각한 채 이미지 만들기에 신경 쓰다 희생을 키운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미지에 중독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지 메이킹에 중독된 이런 무책임하고 개념 없는 대통령에게는 단 한시도 국가의 안위를 맡겨 놓을 수 없다. 국회의 압도적 탄핵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다.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이 탄핵 당한데 대해 “피눈물이 난다” “국정수행의 진정성을 의심받아 안타깝다”며 억울해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자기 이미지에 스스로 속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자기 능력에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대통령 자리를 탐했겠지만 말이다.
대통령은 항상 혼자서 TV를 보며 밥 먹고, 집무실에서 일하기보다 관저에 머물기를 좋아했다는 게 게이트 관련 보도들을 통해 드러났다. 대통령은 소통하지 않아도, 또 공부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이미지 정치가 만들어 낸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박근혜의 정치인생은 성난 민심의 파도에 의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떤 내실도 없이 오로지 이미지에만 의존했던 박근혜의 18년 정치는 ‘사상누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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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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