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은 유태계 음악가였다. 고품격 낭만주의 성향의 아름다운 작품을 수없이 남겼지만 2차대전시 히틀러가 집권하자 독일에서 멘델스존(연주)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히틀러 사망 뒤 이스라엘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스라엘에서 바그너를 연주하는 것은 메가톤급 매국행위에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다니엘 바렘보임은 유태계였지만 이스라엘에 기어코 바그너를 울려퍼지게 하며 세계평화(?)에 기여했는데 이 반항아를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이나 일반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렘보임이 펼친 이 용감한 행위는 전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 그것은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상처의 현장에서 펼쳐진 극기의 모습이었기에 더욱 감동적인 것이었다.
세상은 가끔 정신세계에서의 왕도(王道)의 실종…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허상이니 하지만 사실 인간이 얼마나 갈등하는 존재로서의, 실은 반목보다는 고상한 평화를 열망하는 존재인가를 모르기에 하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리더십이 예(禮)와 결합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왕도(王道)라 부른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뜻)와 비슷한 뜻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는 사회에 대한 책무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둘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멘델스존은 모든 음악가 중에서도 가장 귀족적인, 아니 王道(?)적인 기질을 보여준 작곡가이기도 했다. 마치 대양처럼 밀려오는 여유라고나 할까… 그 우아함을 음악 속에 펼쳐낸 가장 대범한 음악가 중의 하나였다. 현실에 절박했던 동시대의 음악가들과도 달랐는데 그의 고상한 예술에 가장 열광한 사람이 바로 괴테와 같은 문호이기도 했다. 어쩐지 편해지는 예술이라고나 할까, 여유만만한 선율…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으면서도 또 그만의 자존감… 그러면서도 포근하고 아련한 예술의 훈향이여. 멘델스존에서 우리는 마치 고향의 아늑함… 그리고 이기심따위에서 벗어난 먼 그리움과 동경을 열망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쩐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인생이 주는 그 따뜻함과 긍정, 무한한 포옹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요즘 한국민의 김치 근성이 전세계적으로 화제다. 촛불시위 때문인데 ‘욱’하는 국민성… 수백만명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나가라 들어가라 하는 모습은 (18, 19세기도 아니고) 외국인들의 눈에 다소 기이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물론 가장 큰 틀에서 리더십의 부재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서로를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보다 넓은 세계에서 헤엄치는 그런 여유로움의 부재가 낳은 사회현상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사람이 실연당했을 때, 혹은 실망과 절망감으로 공격받았을 때, 그 앞 모습과 뒷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다. 질타받고, 리더십이 상처받았을 때 지도자가 과연 폭력적(패도)으로 변하지 않고 같은 품격과 양심 그리고 카리스마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까? 왕도란 무엇인가? 철인군주… 혹은 덕과 품격을 갖춘 지도자… 이런 것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정신적인 의미에서도) 왕도야말로 바로 대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피해의식을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여유… 그것은 결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禮, 천박함과는 거리가 먼…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그런 본질적인 귀족주의… 소위 말해 (조선의) 양반 기질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품격이 상실된 시대, 특히 요즘같은 혼란한 시기에 어울리는 음악으로서 멘델스존의 트리오를 다함께 편지 띄워보면 어떨까? 멘델스존은 모두 2개의 피아노 트리오를 남겼는데 그중 1번 D단조는 세계 3대 트리오에 낄만큼 유명하다.
1840년에 발표되었는데 슈만이 이 작품을 듣고 베토벤 이후 최고의 트리오라고 추켜세웠다는 작품이기도 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유려하고 낭만적인데, 모든 사람의 귀를 홀리게 할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오히려 귀에 자극적이지 않고 형식미를 갖춘 우아한 선율미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날렵한 선율미, 혹은 어떤 강렬한 감동같은 것을 느끼고 싶은 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이겠지만, 진정한 사자(왕자)는 결코 함부로 발톱을 세우거나 휘두르지 않는다. 마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품격의 예술이라고나할까, 마음의 고향을 찾고 싶은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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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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