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를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그룹을 들라면 두 말할 것이 없이 백인 중하류층을 꼽아야 할 것이다. 펜실베니아와 오하이오, 미시건 등 소위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옛 공장 지대 백인 노동자들은 세계화와 자동화로 사라진 일자리를 되찾아 주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에 열광해 과거 민주당 지지에서 선회했고 이들의 몰표가 트럼프 당선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된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그가 짠 내각 면면을 살펴 보면 이들 백인 중하류층의 모습과는 좀 차이가 있다. 좀 차이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라면 트럼프 내각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간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상무장관으로 발탁된 윌버 로스의 재산은 25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의 부관으로 내정돼 있는 타드 리케츠도 억만 장자다. 교육부 장관 지명자인 베치 드보스 역시 앰웨이로 재산을 모은 억만장자 집 출신을 남편으로 두고 있으며 재무장관 내정자인 스티븐 므누친은 월가 출신 백만 장자다.
거기다 전 대통령 후보였던 미트 롬니까지 국무장관에 지명된다면 트럼프 내각의 총재산은 다시 수 억 달러 더 늘어나게 된다. 45억 달러로 추산되는 재산을 갖고 있는 트럼프는 물론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 부자다.
백만장자로 이뤄진 내각이라고 해 반드시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 트럼프는 향후 10년간 6조 달러에 달하는 감세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므누친 재무 장관 내정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취임하면 이 감세안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방 상하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공화당 지도부 또한 감세에 적극적이어서 이 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 안이 실현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일까.
월스트릿 저널은 최근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연소득 70만 달러 이상의 상위 1%는 21만 달러의 감세 혜택을 보지만 그 다음 19%에게 돌아가는 세금 혜택은 6,800달러, 그 다음 20%는 2,000달러, 그 다음 20%는 1,000달러, 그 다음 20% 400달러, 마지막 20%는 100달러의 이득을 보게 된다. 트럼프가 추진하는대로 상속세마저 폐지된다면 45억 달러에 달하는 그의 재산은 세금 한 푼 없이 고스란히 그의 자녀들에게 넘겨진게 된다. 이런 결과를 보겠다고 백인 중하류층이 그토록 트럼프에게 열광했는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가 이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멕시코로 1,000개의 일자리를 옮기려던 캐리어사에 온갖 협박과 회유를 해 이를 번복시켰다. 사라질뻔 한 일자리를 되찾은 인디애나 주민들은 기뻐하겠지만 이는 1억 2,000만 개에 달하는 미국내 일자리 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뿐 아니라 이런 식의 시장 개입은 역효과만 부른다.
이 회사가 인디애나 주 정부로부터 받기로 한 세금 혜택만 700만 달러에 달하는데 이 돈은 결국 다른 납세자에게 거두거나 아니면 다른 예산을 삭감해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는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려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이렇게 만든 상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이들 회사를 망하게 하고 소비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들 회사의 외국 경쟁자들까지 해외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렇게 되면 가격 경쟁력을 잃은 미국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줄어들 것이며 결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사라진 상품의 가격은 오르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백만장자 내각이라고 반드시 정치를 잘못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백만장자들로 채워졌던 워런 하딩과 율리시즈 그랜트 내각은 미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내각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수차례 파산법을 이용해 부채를 털고 그 덕으로 오랫동안 연방 소득세까지 내지 않은 트럼프가 과연 대통령이 된 후 사심을 버리고 모든 미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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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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