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 살수록 존경하는 사람이 는다. 가까이 사는 이 중에 나보다 이쁘고 나보다 키도 크고 나보다 가진 것도 많아서 일년에 수차례 외국여행 다니는 게 일인 이가 있다. 얼마나 팔자 좋은 사람인가, 노는 일은 거저먹는 일인줄 알고 부러워했는데 노는 것도 여간 고된 일이 아니란 걸 드디어 깨달았다. 앞으로 여행이 삶인 분들을 존경하기로 작정했다.
지구는 한마을이라는데 웬 시차적응은 그리 힘드는건지 3주 갔다와서 꼬박 3주를 비몽사몽간에 보냈다. 놀다와도 이리 힘든데 처자식 벌어먹여 살리려 한달에도 수차례 한국을 드나들어야 하는 사업가들은 얼마나 고달플까. 일등석 타는 사람 부러워 했는데 그것도 앞으론 안부러워 하기로 했다.
한국을 떠날 때 내가 이곳에 이처럼 매어 살게 될 줄 모르고 단골 양장점에다 옷 맞추러 가을에 오겠다고 했었다. 어느새 여기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길다. 그런데도 나는 늘 그 곳을 잊지못해 언제나 가슴 한쪽이 뻥 뚫려있는 것만 같다. 가도 반겨줄 사람도 없고 있을 곳도 마땅찮은데.
그러다 이번엔 얼떨결에 남 따라나선 거였는데 가길 잘했다. 우선 투숙객의 대부분이 일본인인 작은 호텔이 깨끗하고 편해 이젠 언제라도 가서 누울 자리를 구해논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된 기분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광화문에 살았는데 내가 살던 집은 없어지고 그곳이 어디였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이 변했다. 그래도 크라운 제과 있었을 자리, 미진 국수집이 있었음직한 자리, 단성사와 화신백화점, 신신백화 점 등을 가늠하며 예전의 모습과 흔적을 조금씩 볼 수 있어 좋았다. 인사동에서 종묘 사이의 오래된 한옥들이 납작한 지붕밑의 작은 몸채를 그대로 간직한 채 하나하나 작은 식당이나 상점으로 변모해 있었는데 예전의 골목길이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깔끔하게 치장한 게 보기 좋고 낙원동엔 떡집이 여전히 있다.
경복궁과 인사동 근처에는 젊은 중국애들이 한복을 대여해 입고 깡충거리며 다니는 모습이 예쁘고 내가 어렸을 때 스케이트를 타던 경복궁 안의 연못도 그대로 있다. 그 시절에 스케이트를 타다 문닫을 시간이 되면 경비 아저씨는 나가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우린 한번이라도 더 돌려고 아이스 쇼 하듯 키 큰 남학생 오빠들을 앞세우고 기차놀이하 듯 줄줄이 매달려 연못을 뺑뺑 돌았었다. 하얗게 입김을 내뿜으며 깔깔거리던 겨울... 그 시절에 있던 붕어빵 파는 노점은 지금도 김을 내며 풀빵을 구워내는데 3주 지내본 결과 종묘쪽은 천원에 세 개, 인사동쪽은 천원에 다섯 개 인것을 가려낼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거리의 시세에 통달할 수 있었던 나의 못말릴 총명함! 거리에서 뜨끈뜨끈한 풀빵을 먹으며 행복해 하며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노점에서 깎지 마라시던 말씀이 기 억 나 묻고 싶어진다. 풀빵 다섯 개에 이렇게 뿌듯한 건 괜찮은건가요?
청계천도 예쁘고 동대문 근처에 성벽을 복원해 놓은 것도 예쁘다. 동대문에는 마치 은빛 금속 뭉개구름같이 생긴 건물이 디자인 하는 젊은 이들을 위해 생겼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꼭 케이 팝 가수들처럼 늘씬하게 키가 크고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들이 치렁치렁한 코트자락을 바람 에 흩날리며 쫄바지에 긴 부츠, 몇 개의 귀고리를 한 모습으로 몰려 다닌다. 이젠 할머니가 되어놔서 입 딱 벌리고 뒤돌아가며 구경해도 아무도 상관 안한다.
청계천에는 아직도 헌책방이 몇 남아있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대학생들과 마주쳐 거리 인터뷰라는 것도 했다. 미국에 가서 사십년을 산 할머니가 헌책방을 돌아다닌다니 신기해 한다. 미국에서 사십년이나 살고도 어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느냐는 말을 들으면 내 짧은 영어가 무안해 어린애처럼 혓바닥이 나오려는 판에.
인심좋은 맥도날드의 시니어 커피가 그리운 것외엔 별 불편이 없다. 아니, 그동안 밥 안해도 되어 정말 좋았다.
서울은 예쁘다. 빠리 못잖게. 그리고 이젠 언제라도 갈 수 있다
<
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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