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로 가는 사람은 호세 마르티 국제 공항에 내리게 된다. 호세 마르티는 누구인가. 쿠바 독립의 아버지다. 독립을 주장하다 16살 때 감옥에 간 후 스페인 군과의 교전 중 42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쿠바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가 쓴 수많은 시에서 뽑아 만든 ‘관타나메라’는 쿠바의 국민 가요다.
불꽃 같은 그의 삶은 쿠바는 물론 라틴 아메리카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에게서 감동 받은 대표적 인물의 하나가 피델 카스트로다.
한국의 홍길동과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처럼 피델은 스페인에서 쿠바로 이주한 부농과 그 하녀 사이에 서자로 1926년 태어났다. 아바나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그는 잠시 빈민들을 돕기 위한 변론을 맡는다. 정치를 통해 사회 정의를 구현해 보겠다는 생각에 1952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무위로 끝나고 만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권력 쟁취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1953년 100여 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산티아고에 있는 몬카다 군부대를 습격한다. 그러나 숫적 열세와 준비 부족으로 이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70여 명이 사살되며 피델과 동생 라울을 비롯한 나머지는 체포된다. 피델은 즉결 처형될 수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알던 신부의 도움으로 재판에 넘겨져 15년 형에 처해진다. 이 때 그가 한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란 말은 지금까지 명언으로 남아 있다.
감옥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내야 할 위기에 처했던 피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반군의 기세가 꺾였다고 오판한 바티스타가 불과 2년 뒤 그를 사면한 것이다. 피델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멕시코로 건너가 정권 전복을 모의하며 ‘그란마’(할머니)란 이름의 요트를 타고 다시 쿠바에 상륙한다.
체 게바라를 포함한 80명의 대원들은 쿠바에 내리자마자 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대부분 사망하지만 피델을 비롯한 생존자들은 쿠바 동쪽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으로 들어가 게릴라 전을 벌인다. 이때 뉴욕타임스 기자로 있던 허버트 매슈즈가 산속으로 들어가 피델을 인터뷰 한 뒤 그를 “교육받고 확신에 가득 찬 이상주의자이며 용기있고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면서 그는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혁명 지도자로 떠오르게 된다. 헤밍웨이와 사르트르, 밥 딜런 등 세계 문화 예술인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 된 것은 이 때부터다.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에도 불구, 국민들의 신망을 잃은 바티스타는 피델이 이끄는 게릴라 진압에 실패하며 1959년 1월 1일 자정 몰래 비행기를 타고 쿠바를 떠난다. 아바나를 사실상 무혈 입성하며 권력을 잡은 피델은 과거 바티스타가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500여명의 바티스타 정권 주요 공직자를 군법 재판에 부쳐 유죄 판결을 받아낸 후 즉결 처형했다.
그가 미국 기업이 갖고 있던 사탕수수 농장과 정유 시설들을 국유화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극도로 나빠졌고 급기야 1961년 케네디 행정부는 1,200여명의 쿠바 반군을 ‘돼지만’에 상륙시켜 카스트로 정부 전복을 꽤하지만 이는 비참한 실패로 끝나 피델의 위상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는 그 후 장장 50여년 동안 수백 차례의 암살 기도를 이겨내며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공산 혁명을 전파하는데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가 공산화에 힘을 쏟는 동안 이상사회 건설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소련이 망하고 그의 유일한 후원자이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죽은 지금 현 쿠바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유럽과 캐나다의 관광객들이 뿌리고 가는 외화 뿐이다. 쿠바 정부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광범위한 매춘 산업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 그가 60년 가까이 집권한 쿠바는 정치적 자유는 실종된채 50년 묵은 차가 굴러다니는 실패한 나라다.
영원히 살 것 같던 피델 카스트로가 지난 주말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화장돼 그의 영웅 호세 마르티가 누워 있는 산티아고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묻히게 된다. 마르티는 그의 시에서 “대지의 가난한 자들과 운명을 함께 하고 싶다”고 노래했다. 피델도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혁명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그런 사회는 이뤄지지 않는다. 피델의 실패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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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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