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월급쟁이 회계사 생활을 청산하고 고용주가 된지도 7년이 되었다.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고 있는 전문가나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사원만을 채용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잘못된 습관과 지식에 젖어든 어중간한 경력자를 교육, 개선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경험에서 터득한 원칙이다.
신입사원이 근무를 시작하는 첫날 회사의 방침이자 전문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두 가지를 알려준다. 듣는 사람이 경고나 협박으로 느낄 만큼 강하게 얘기한다. “회사 내에서 알게 된 것은 밖에 나가서 얘기하지 말 것” 그리고 “모르는 것은 (특히 클라이언트에게) 아는 척 하지 말 것”비밀 준수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절대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입구에서 클라이언트들끼리 마주치고는 사무실에 들어와서 묻는다. “저 사람도 여기서 도움을 받나보죠?”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저는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작은 정보가 새어 나가면 큰 비밀이 뒤따르는 법이다.
회계사는 세법이나 숫자에 대해서 즉각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불행히도 세법은 한 두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다. 전문분야별로 지식과 경험을 심화시키는 이유이다. 하지만 모른다고 대답하면 수준이하의 회계사라고 의심받기 십상이다. 영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악소문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모른다고, 그래서 그 일을 맡을 수 없다고 대답을 하면 더 큰 재난을 막을 수 있다.
생각 2-‘4차 산업혁명, 앞으로 5년’이란 책을 지난달 서울 출장길에 사왔다. 눈앞에 다가올 새로운 산업에 방향을 제시한다는 소개글을 읽고 샀다. 삼성전자에서 전략, 기획을 담당하다 최근 퇴직한 임원이 쓴 책이라 믿음이 갔다. 미래에 어떤 혁명이 다가오고 있고,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사회는 어떤 식으로 적응할 것인지 등의 통찰력을 기대했었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밝히자면, “제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쟁자들이 지금 이런 것을 하고 있다는 과거와 현재를 담은 책이었다. ‘삼성전자 앞으로 5년 동안 해야 할 사업’ 정도가 적당한 제목의 책이다. 세상을 주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삼성의 가치가 아니며,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살펴서 적당한 시기에 인수, 합병으로 사업영역을 확보하라는 조언이었다.
사업성이 불확실한 단계에는 정부의 투자를 유도하고, 수입전망이 좋아지면 진입장벽을 만들어 경쟁자들을 물리치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대리나 과장이 정리했음직한 잡다한 내용의 업계동향 보고서다. 책 제목은 마케팅목적으로 과장되었다고 출판사 탓을 할 수도 있지만, 삼성이란 초일류기업의 기획담당 전무가 책으로 엮기에는 너무 번잡한 내용이다. 기획담당 전무라면 이런 책을 쓸 시간에 올더스 헉슬리가 85년 전에 쓴 ‘멋진 신세계’를 읽어보는 것이 삼성을 진정한 일류기업으로 만드는 통찰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 3-한국의 권력형 비리에는 항상 재벌이 등장한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재벌들은 강압에 못 이겨 ‘삥’을 뜯긴 피해자들로 처리될 모양이다. 검찰의 법리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재벌이 반대급부를 기대하며(또는 과거에 대한 보상으로) 권력자에게 뇌물을 바친 것이란 것은 세 살짜리 어린애도 유추할 수 있다. 유신독재의 비호 하에 재산을 거머쥔 재벌들은 독재의 추종자들과 함께 한국 보수의 중심세력을 형성했다.
보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법치를 추구한다. 민주주의란 독재의 반대 개념이며, 시장경제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과 결과의 배분을 임의로 결정하는 관치경제의 반대개념이다. 규정과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권력자의 사적인 계통을 중시하는 통치방법이 법치의 반대편에 있다.
경제 살리기를 주창해온 현 정권은 보수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박근혜정권이 일컫는 경제란 삼성과 재벌기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로서 가치의 혼란을 느낀다. 왜 추구하는 가치가 상반되는 그들과 우리가 ‘보수’라는 용어를 공유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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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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