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 주의 별명은 ‘대통령의 어머니’다. 이곳에서 8명의 대통령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토록 많은 대통령이 나온 이유의 하나는 이곳이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한 때는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대표적 ‘러스트 벨트’의 하나가 된 지금도 오하이오에는 ‘프락터&갬블’, ‘굿이어 타이어’ 등 대형 제조회사가 있고 제조업 규모가 50개 주 가운데 세번째로 크다.
펜실베니아도 비슷하다. 지금은 쇠락한 공업 지역의 표본 같은 곳이지만 과거 미국 제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철강 산업의 본거지로 앤드루 카네기가 세운 ‘US 스틸’이 이곳에 있다. 한 때 ‘세계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건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소득이 높던 디트로이트는 지금 가장 처참하게 몰락한 도시의 하나로 전락했다.
공교롭게 한물 간 이들 세개 주가 4년마다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 때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 빌 클린턴 이후 20년이 넘게 민주당을 지지하던 이들 3개 주 유권자들은 올 대선에서 공화당의 손을 들어줬다. 덤핑과 저임으로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중국과 멕시코에 보복하고 역시 백인 중하류 층의 마음에 들지 않는 밀입국자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공약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올 선거에서 민주당은 백악관만 내준 것이 아니다. 연방 상하원 탈환에도 실패했고 주 정부 선거에서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버락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2012년 오바마가 간신히 재선에 성공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은 참패에 참패를 거듭해왔다. 현재 공화당은 99개 주 상하원 가운데 69개(50개주 가운데 네브라스카만 단원제라 총 상하원 수는 99개다)에서 다수고, 50개 주지사 자리 중 33개를 갖고 있다. 94년래 최고 기록이다. 내년이면 공화당은 50개 주 가운데 25개 주를 완전 장악하고 20개 주를 부분 장악하게 된다. 미국민의 80%가 공화당 주도 지역에서 살게 되는 셈이다. 민주당이 완전 장악하고 있는 주는 가주와 뉴욕 등 5개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이 클린턴과 오바마 같은 간판 스타에만 의존해 대선에 신경을 쓰는 사이 공화당은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를 파고 드는 풀뿌리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민주당은 연방 상원 10%, 연방 하원과 주 상하원 20%, 주지사 자리의 35%를 잃어버렸다. 선거에서 진 민주당 주 상하원 의원 수만 900명에 달한다.
주정부 레벨 선거를 등한시 하는 바람에 주정부를 장악한 공화당이 2010년 센서스에 따라 정해지는 주 및 연방 선거구 책정에 주도권을 갖게 됐고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 결과 2012년 연방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공화당보다 140만 표를 더 얻고도 234대 201로 하원 다수당 자리를 공화당에 내주고 말았다.
이처럼 하부 구조가 부실하다 보니 오바마와 클린턴이 사라지고 난 이후 민주당을 이끌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공화당 위주로 기울어진 선거구를 바로 잡으려면 2020년 센서스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때가 돼 주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공화당 세상은 오래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서는 지금 대선 패배의 원인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벳 워런 같은 민주당 좌파들은 이번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가 월가와 너무 친한 특권층의 이미지를 떨쳐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더욱 더 진보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도파들은 패인을 무당파를 흡수하지 못한 데서 찾으며 공화당 정책이라도 포용할 것은 포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길게 보면 민주당의 앞날이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민주당 성향인 소수계 유권자 숫자는 4년마다 2%씩 늘고 백인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과 지난 8년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소수계가 늘었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선거에서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고 중도파까지 끌어안을 메시지 창출과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지도자 육성이 시급하다.
어느 당이든 한 당이 오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 속히 민주당이 이번 패배의 아픔을 털고 경쟁력 있는 정당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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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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