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도둑정치(kleptocracy)가 횡행하게 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그보다는 뉴욕타임스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폴 크루그먼이 한 말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상당한 불쾌감을 보였다. 그리고 며칠 못가 이 같은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은 탓은 탓인가. 아니면 트럼프 시대를 내다본 예언인가.
kleptocracy란 말은 문자 그대로 도둑에 의한 정치, 혹은 통치형태(government by thieves)를 뜻한다. 한동안은 부패로 얼룩진 아프리카 신생공화국 등에나 따라붙던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 등 권위주의 형 체제의 급부상과 함께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도둑정치는 서방 민주주의세계의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푸틴 비자금, 중국 실세의 숨긴 돈 등 권위주의 형 체제에서 거액의 검은 돈이 서방으로 유입된다. 그 자금 유치를 위해 서방의 금융기관들은 앞다퉈가며 독재자들과 유착관계를 맺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감염된다. 부정부패라는 바이러스다.
도둑정치 체제로부터의 검은 돈 유입은 서방의 가치관과 투명성을 무너뜨리면서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의 도둑정치’의 저자 커렌 더위샤는 kleptocracy를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리스크(risk)는 국유화 하고 리워드(reward)는 사유화 하는 체제다’- 집권층이 저지른 부정부패의 부담은 모두 국민에게 돌아가고 단물은 집권 엘리트들의 차지라는 얘기다.
공적 권력을 사유화 한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 등의 권력엘리트가 부패 카르텔을 형성해 사적 이해를 위해 공적 자산을 약탈한다. 이것이 도둑정치의 본질이라는 거다.
이 체제는 그 어느 체제보다 심한 권력 강박증세를 보인다. 권력이야말로 ‘리워드의 사유화’를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둑정치가 그렇다. 한국인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전두환, 노태우, YS, DJ시대에 이미 경험을 했으니까. 최순실, 아니 박근혜게이트도 본질에 있어서는 도둑정치의 산물이다. 그러나 뭔가 상당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돌연변이라고 하면 지나치고, 뭐랄까. 상당히 전이(轉移)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할까 하는 것이 박근혜시대의 한국형 도둑정치 같다.
마각이 드러난다. 그러면 급히 해외로 달아난다. 그도 아니면 사과를 하고 바로 국정에서 물러난다. kleptocracy가 말로를 맞았을 때 권력이 보이는 일반적인 형태다. 그나마 인류의 보편적 양심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증거라고 할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행태는 이와 사뭇 다르다. 끝까지 무조건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몸통인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진박(眞朴)이니, 친박(親朴)이니 하는 권력 주변의 인사들까지.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후세에 길이길이 회자될 명언(名言)을 남발하고 있다. ‘촛불은 촛불 일뿐 바람 불면 꺼진다’는 한 친박 인사의 말이 그렇다. ‘초헌법적 여론몰이의 여론재판’이란 또 다른 친박의 발언도 역대급 명언이다.
침착무비하고 변화가 없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거의 불가해한 경지를 보이고 있다. 3주째 지지율이 5%에 머물고 있다. 국민은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러나라는 거다. 거기다가 검찰은 박 대통령을 사실상 범죄피의자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국정에 나서고 또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도 참석한다는 것이다. 그 당당한 태도에 주한 외교사절들도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교적으로 식물상태에 있다. 그런데도 정상외교를 하겠다는 그 의지가 가히 초현실적으로 들려서다.
박근혜게이트는 본질에 있어 도둑정치의 산물이다. 그러나 뭔가 차별성이 존재한다. 무엇이. 비리가 폭로되자마자 따라 붙었던 단어, 주술적 샤머니즘에서 그 답은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샤머니즘은 망아(忘我)상태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능력자 샤만에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은 민심(民心)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홀로 아득히 저 우주 공간으로부터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말이지 참 나쁜 대통령’이란 여론의 소리에 그토록 무관심 할 수 없는 것이다.
도둑정치의 말로,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일까. 극단적인 과격주의 대두라는 것이 그 답이다.
권력은 자신의 도둑질을 은폐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철저히 탄압한다. 그 풍토에서 온건세력은 발붙일 곳이 없다. 대신 소리 없이 번져가는 것은 극단적인 과격주의다. 그 과격주의 세력은 체제동요와 함께 표면으로 부상한다. 이와 함께 찾아드는 것은 극도의 혼란, 최악의 경우는 유혈사태라는 거다.
주술적인 도둑정치로 보수진영을 파탄시켰다. 동시에 안보를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아무래도 박근혜 정부는 종북 세력보다도 못한 ‘아주 나쁜 정부’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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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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