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캠페인 내내 벼랑 끝에 서서 전전긍긍했던 것은 공화당이었는데 선거가 끝나면서 막상 벼랑 아래로 떨어진 것은 민주당이었다. 승리를 확신하며 개표 직전까지 예상조차 안했던 추락이어서 더욱 충격적이고 백악관과 연방 상하원, 주지사와 주의회 선거까지 휩쓴 공화당 압승에 찔린 상처는 너무 깊어 한동안은 아물지 않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역사적 당선과 함께 민주당 천하를 이루었던 2008년과 승리여건이 충분했던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다시 패배했던 2012년의 공화당처럼, 민주당에겐 요즘이 뼈아픈 시련의 계절이다. 당시의 공화당이 그랬듯이 지금의 민주당도 패인분석과 책임공방이 진행되면서 뜨겁게 부딪치는 계파 간 갈등이 심상찮은 내분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어떻게 트럼프에게? 지게 되었는가.
30년 공직의 부산물인 흠집 보따리를 지고 출발한 ‘비호감 후보’ 힐러리 클린턴 자신의 약점과 실수, 중산층에 어필할 강력한 메시지의 실종, 전통적인 민주당 표밭이었던 근로계층 백인들의 이탈, 8년 민주당 정부에 대한 염증, 기성정계에 대한 혐오…패배의 원인은 이미 다각도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적 황야’에 내던져진 민주당은 이제 재도약을 위한 자기성찰에 들어갔다.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 시대에 민주당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민주당을 집결시킬 기본 이념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새로운 민주당의 리더가 될 것인가.
낙선 후 뉴욕자택에서 칩거 중인 클린턴부부가 정치일선에서 사라지고 오바마 대통령과 조셉 바이든 부통령도 무대에서 내려가고 난 후 민주당의 당면문제는 뚜렷한 리더의 부재다.
당장은 상원의 민주당 새 원내대표 척 슈머와 하원의 민주당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가 의회 지도부를 이루고, 리버럴의 기수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두 상원의원이 당내 진보진영을 이끌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진보와 중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당내 분열을 봉합하고 위기의 시대에 당 전체를 이끌고 갈 리더 찾기의 정답에는 부족해 보인다.
서로의 정책 이견도 크고 성향도, 목표도 다르다. 슈머도, 펠로시도 확실한 진보로 출발했지만 금년선거에서만 1억4,100만 달러를 거둔 모금의 귀재 펠로시나 월스트릿과 유대가 강한 슈머에 대한 당내 개혁파의 불만은 상당하다. 그렇다고 극좌 리버럴의 깃발 아래 단합하기엔 실용적인 민주당 주류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다.
양측의 힘겨루기는 공백중인 민주당전국위(DNC)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당의 이념적 리더가 아닌, 기금모금과 전략수립을 주 업무로 하는 의장선출은 원래 1월의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 힐러리가 내정해둔 인사를 뽑는 형식적 절차로 예상되었었다.
그러나 힐러리의 충격적 패배와 함께 2~3월로 연기되면서 몸살을 앓고 있는 당내의 첫 선거가 된 것이다. 별 경쟁도 없이 치러지던 의장선거에 개혁파 키스 엘리슨이 출마선언을 하고 샌더스를 비롯한 리버럴 명사들이 공개지지를 표명하자 중도파 인사들이 출마를 시사하면서 엉뚱한 이전투구가 펼쳐질까 우려마저 자아내고 있다.
하원 민주당 대표 펠로시도 개혁파의 도전에 직면했다. 오늘로 예정되었던 대표선출이 장기집권 지도부 교체를 원하는 신참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이달 말로 연기된 것이다.
‘실용적’이라는 포장을 벗긴 담대한 어젠다의 강렬한 메시지를 들고 유권자에게 직접 다가가 호소할 투사정신의 뉴 페이스들이 주도하는 대대적 변화를 요구하는 개혁파와 민주당이 너무 왼편으로 기울면 공화당에게 중도의 여지를 준다면서 “좌파 포퓰리즘이 우파 포퓰리즘을 이기기는 어렵다”는 중도파의 대립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다.
민주당의 여정이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워싱턴 모든 권력구조에서 2선으로 밀려나며 ‘바닥’을 쳤으니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그리고 선거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패’라기 보다는 ‘석패’에 가깝다. 당락을 바꾸진 못해도 전체득표수에서 힐러리는 트럼프보다 100만표나 더 받았다. 민심이 완전히 등 돌린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명확한 메시지로 무장한 강력한 리더만 등장한다면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뜻이다. 공화당이 참패를 딛고 압승을 거두었듯이 민주당 역시 바람 부는 황야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패배를 딛고 얼마나 빨리 재기할 수 있을지는 이 황야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과제는 수없이 많다 : 충분히 갈등을 겪으면서, 인재를 키우고, 보통사람들의 삶을 위한 어젠다를 정립해야 한다. 이번 선거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민주당과 백인표밭’의 화해는 경합주를 중심으로 당장 시작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싸움을 택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의회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되, 당당하게 타협도 하며 ‘아니요 당’으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민주당 자성의 시간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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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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