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이겼다-. 이 한 마디 소식에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충격, 경악, 그리고 망연자실….
충격을 넘어 공포였다.
세계에 암흑시대가 덮쳤다. 가디언지의 논평이다. 스피겔지는 원색적 포퓰리즘이 이성(理性)을 눌렀다는 논평과 함께 트럼프 승리를 정치적 대파국으로 진단했다. 환상은 산산이 깨졌다. 역사는 종언된 것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되돌아 왔다. 이코노미스트지의 한탄이다.
미국 국민의 양식(良識)을 믿었다. 그런데 그 미국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 사실이 충격파로 전해지면서 전 세계를 불안과 우려로 몰아간 것이다.
민주당은 완전 기습을 당했다. 공화당도 경악했다. 언론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트럼프 승리에 넋이 빠지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한 주를 맞는 시점에도 여전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위기다.
그 가운데 반성문이 줄을 이루고 있다. 성난 민심을, 깊은 여론의 흐름을 몰랐다는 자책이 언론마다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가져왔나. 그 뼈아픈 복기復棋)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새삼 주목되고 있는 것이 백인 저소득층이다. 본래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바로 이들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이른바 ‘루스벨트 연합’도 바로 이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를 축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인종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미국 내 최대 인구집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이 나돌았다. 그들에게서는 정치적으로 별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왜. 민주당입장에서 볼 때 언제나 민주당에 충성을 보이는 ‘집토끼’로 간주됐기 때문이었을까.
그 백인 근로계층이 결집했다. 대거 투표장으로 나간 거다. 그리고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졌다. 힐러리 클린턴은 그들을 외면했다. 오히려 ‘개탄할 사람들’(The Deplorables)로 몰아 부친 것이다. 결국 이들이 대선의 흐름을 갈랐다. 이런 뒤늦은 정치 공학적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면 이로서 모든 것이 설명된 것인가.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조지 프리드먼은 거기에 더해 가치관 싸움, 문화전쟁 측면에서 분석을 하고 있다.
동성애는 말할 것도 없다. 혼전 섹스, 낙태도 죄악으로 교회와 부모로부터 듣고 자랐다. 당연시 됐던 그들의 가치관, 상식이 한 세대가 지나면서 일종의 혐오증세(phobia)로 취급받게 됐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자란 가치관은 공적 공간에서는 말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새로운 도그마가 된 풍토에서.
이들이 분노에 차 반기를 들었다. 그 결과가 트럼프 승리라는 거다.
무엇이 이변을 불러왔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두 계층 간의 날로 벌어지고 있는 소득격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보 측에서의 분석이다. 소득 불균형이 계급간의 갈등을 부채질 했다. 트럼프는 그 틈을 타고 들었다는 것이다. 틀리지 않은 진단이다.
그러나 반만 맞은 답이 아닐까.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아더 브룩스의 지적이다. 그는 그보다는 ‘인간존엄성의 결손’이라고 할까, 자존감 박탈에서 답을 찾고 있다.
무엇이 ‘그들’과 ‘우리들’로 편을 갈랐나. 단순한 소득격차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존엄성의 문제가 내재돼 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드러난 경제의 양극화는 미국의 문화에도 스며들었다. 경제적 패자는 필요 없는 인간 취급을 당한다. 수백만의 사람들, 다시 말해 상당수 저소득층 백인들은 ‘새로운 흑인(New Black)‘으로 불려진다. 그 정황에서 그들의 자존감은 무너져 내린다. 인간존엄성의 갭은 깊어지는 것이다.
자존감이 박탈 된 삶은 쇼킹한 결과를 가져온다. 트럼프 승리도 그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들은 결코 더 이상 다수세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의 박탈, 그 반탄력은 트럼프시대 개막이라는 정치적으로 준 혁명적 상황을 몰고 왔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수준을 헤매고 있다. 지지율은 계속 5%선을 맴돈다. 부정평가는 9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엇이 이 같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나. 외적 요인에 의한 자존감의 박탈에서 그 답이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헌법을 파괴했다. 국민을 배반했다. 천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가 신기(神氣)까지 접했다고 한 다. 그런 인간들과 한 통속이 돼 어둠 속에서 피와 땀으로 이룩한 국가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한국인의 자존감은 일시에 무너졌다. 분노가 폭발하면서 탄핵의 외침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런데 한 가지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트럼프의 등장을 구세주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승리를 내심 전 세계적인 우파의 승리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반전을 꾀한다. 트럼프 변수가 가져온 급박한 현실에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내걸면서. 아무래도 현실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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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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