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국제공항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 온 외국인이 받는 첫 인상은 ‘한국은 매우 깨끗하고 발전된 나라’일 것이다. 그만큼 인천 공항은 쾌적하며 안전하고 첨단 기술로 지어진 곳이다. 2001년 3월 문을 연 이곳이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ASQ)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의 출입국 시스템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편리하다. 한국 여권과 주민등록증이 있는 사람은 자동출입국 심사를 신청할 수 있는데 비용도 없으며 신청에서 완료까지 1분이 걸리지 않는다. 미 시민권자는 글로벌 엔트리에 가입해야 해 좀 까다롭지만 가능은 하다.
일단 자동 출입국 승인을 받으면 출입국시 외교관 전용 라인을 이용할 수 있다. 처음 여권 판독기에 여권을 대면 문이 하나 열리고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대면 두 번째 문이 열린다. 이 시스템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해 심사대를 빠져 나가는 데 1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돼 있는데 사실이다.
이렇게 심사대를 빠져 나가면 서울 도심 한 가운데인 서울역까지 가는 직통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원래 요금은 8,000원이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일부 항공사 이용객은 할인 혜택이 있어 6,900원이면 된다. 걸리는 시간은 넌스탑으로 43분. 객차마다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다. 인천 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한국의 무한한 포텐셜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서울역을 나오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대통령은 울먹이며 청와대에서 굿을 하지 않았다는 기자 회견을 하고, 주말마다 도심 한복판에서 ‘박근혜 물러가라’는 촛불 시위가 열린다. 집권 여당은 서로 모여 앉아 욕설을 퍼부으며 난장판이고 야당은 야당대로 서로 당리를 재며 거국내각부터 정권 퇴진에서 탄핵까지 중구난방이다. 첨단 인천 공항과 엉망진창 정치판이 한 나라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금 한국 정치판이 이토록 혼란에 빠진 일차적 책임은 물론 박근혜에 있다. 정치적 무자격자이자 정체불명인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고 공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것을 방조했거나 방치한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도 방조했다면 공범이고, 집권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몰랐다면 눈과 귀가 멀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건 박근혜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임기 말이면 대부분의 정치인이 겪는 ‘절름발이 오리’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죽은 오리’가 된 것이다.
‘죽은 오리’가 된 이상 죽은 오리처럼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국정은 여야가 합의한 총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하루 속히 차기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기는 작업에 전념하는 것이 순리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려 한다면 이는 국정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만 낳는다.
박근혜는 국민 모두를 실망시켰지만 특히 자신을 지지해 준 우파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대북 정책을 비롯, 보수가 밀어준 정책 기조가 도매금으로 좌파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됐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좌파를 키워준 것은 한국의 못난 우파다.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은 한국 민주주의에 희망을 버린 일부 집단을 종북 좌파로 만들었고, 무능하며 줏대 없고 부패한 이명박은 대한민국을 광우병과 천안함 괴담이 난무하는 곳으로 방치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혹세무민 교주의 딸 최순실에 홀린 박근혜는 좌파의 기세를 살리는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다.
거기다 대한항공의 조현아에서 CJ의 이재현, SK의 최태원 등 한국의 재벌 2세와 3세들은 갑질과 금융 범죄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시험공부에 헉헉대도 제대로 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마당에 부패한 정치권력과 재벌이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는데 무슨 살맛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6.25의 참화와 장기 독재를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떠나는 비행기 아래 반짝이는 인천 공항은 한국은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임을 일깨워 준다. 한국 국민은 이번 위기도 슬기로이 극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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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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