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묻지마 애정을 드러내 왔던 보수인사들도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극우적 색채의 글을 써 왔던 한 중앙일간지 논객은 자신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다. 대통령이 된 것도 결정적으로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다면 국회의원도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썼다.
이 논객의 지적처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그의 능력이나 실력이 아니었다. 온전히 아버지의 후광 덕이었다. 박근혜는 오랜 은둔을 끝내고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디뎠다. 박근혜의 국회의원 시절 성적표를 보면 “박정희 딸이 아니었다면 국회의원도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일갈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다. 완전 낙제점이다.
의원생활 15년 동안 발의한 안건이 고작 15건이다. 다른 의원들은 연 평균 9건씩 법안을 낸다. 출석률도 형편없었다. 한 마디로 국회의원 박근혜는 능력도, 성실성도 크게 부족했다. 이런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를 탐했을 때부터 이미 비극의 씨앗은 잉태돼 있었다.
이번 막장극의 몸통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미숙한 판단과 어리석은 결정이 초래한 사태이다. 이런 문제점을 이미 많은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허상에 가까운 이미지로 포장돼 있다는 걸 알아차린 국민들이 적지 않았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박근혜는 이미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작은 일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큰일을 잘 해낼 수 없다. 정말 유권자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정치인이라면 국회의원 시절부터 성실성과 능력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났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박근혜의 만들어진 이미지에 많은 이들이 현혹되고, 이것이 그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웠을 대통령이라는 자리로까지 밀어 올린 것이다.
하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국기문란 사태 속에서도 한줄기 빛은 보인다. 그것은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때 무엇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깨우침이다. 절대 겉포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21세기 지도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공감과 소통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어려서부터 우리가 거치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과 다양한 조직체 속에서 우리는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하고 화해하는 경험들을 통해 ‘역지사지’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간다.
어릴 때 청와대 들어가 항상 높임만 받고 자란,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는 고립 속에서 배신감에 떨어야 했던 대통령에게는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게 그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심각한 결격사유가 될 수 있음을 칼럼을 통해 여러 번 지적했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악몽 같은 현실이 됐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 역시 사회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동기들이 말단이던 시절 어찌어찌해 너무 일찍 대기업 사장자리에 올랐다. 그는 대통령 임기 내내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는 말만 반복하며 나라 곳간을 축내다 자리에서 내려왔다. 대기업 회장과 대통령 자리가 그의 가문에는 영광이었을지 몰라도 국가적으로는 재앙이 됐다.
자격과 실력을 갖춘 대통령을 뽑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상과 허상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들에게 정신분석 감정서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욱 그렇다. 이럴 때는 보통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무수한 경험들을 되도록 많이 공유한, 즉 사회화 과정을 잘 거쳤는지를 살펴보면 판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수논객은 “박근혜가 평생 아버지에게 빚만 졌다”고 꾸짖었지만 박근혜가 정말 큰 빚을 떠안긴 건 국민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크레딧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나라살림을 선뜻 내준 책임이 국민들에게 있는 것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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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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