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끝자락. 시간은 참 잘 간다. 나뭇잎도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 간다. 빨강, 주황, 노랑, 보라 그리고 갈색. 가는 세월 무슨 재주로 잡을까. 괜히 마음이 울적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또 이렇게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 낙엽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시월의 마지막 날. 바람에 낙엽이 휘날린다. 잃어버린 옛 추억.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춘. 매년 그렇듯, 그저 안타깝고, 슬프고 그립다. 그런 그 날이 또 다시 밤을 향해 가고 있다.
10월은 잊히는 계절이다. 누군가는 첫 사랑을 잊는다. 어떤 이는 아픔을 잊는다. 또 다른 이들은 청춘을, 가난한 추억을 잊는다. 그렇게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은 달이다. 아마도 계절의 경계라 그런가보다. 10월은 뜨거웠던 여름의 출구. 차가운 겨울로 향하는 입구다. 그렇듯, 10월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제대로 잊어야 살 수 있는 시기인 셈이다.
날짜가 주는 의미는 특별나다. 1980년대 고국서 20대 청춘을 보냈으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애틋하게 느껴질 게다. 자신도 모르게 이용이 불렀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 시절엔 참으로 무던히 따라 불렀다. 지금도 10월 말이면 어김없이 읊조린다. 괜히 술 마시고 싶어지는 노래. 낙엽 쌓인 밤거리를 거닐고 싶어지는 곡이다. 물론, 요즘 한국을 생각하면 그런 기분이 아니올시다. 술 마시거나 노래 부를 맛이 나지도 않는단 말이다.
지금 고국은 난리도 아니다. 나라꼴이 몹시 어수선하다. 불안하기 그지없다. 비선의 실세가 드러나면서 ‘대통령의 진실(?)’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다. 국민은 지도자를 잃었다. 대통령은 권위와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국가는 리더십을 잃고 말았다. 아이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제목만 사과였다. 내용은 변명이었다. 그조차도 불과 4시간 만에 ‘거짓’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솔직한 참회와 자백을 다시 하라는 추가 자백 촉구가 나오는 이유다. 시중엔 최순실 대통령, 박근혜 부통령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과연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국민을 속았다’는 한탄이 그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대통령 퇴진촉구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현재 고국의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80년대 유행곡 ‘잊혀진 계절’의 가사를 다시금 음미해보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 채/우리는 헤어 졌지요/우 우 우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잊혀져야 하는 건가요/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나에게 꿈을 주지만/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나를 울려요”
이 가사의 한 대목처럼 70-80세대들은 80년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게다. 오래전 시월에 있었던 어느 독재자의 최후. 전투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힌 대학의 캠퍼스도. 국민들의 자유의지가 폭발한 80년 ‘서울의 봄’도 생생하다. 서울의 봄이 5.17 계엄령과 ‘80년 광주’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한 것도 잊을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거리 곳곳에 배치된 탱크와 장갑차. 통행금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이용되던 ‘3S(Screen, Sport, Sex)’ 정책. 80년에 시작된 컬러 TV 방송, 82년 프로야구 개막. 애로영화의 효시인 ‘애마부인’도 82년 나왔다.
신군부 등장과 민주주의 좌절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코메디언 이주일이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며 웃음을 준 것도 그 시절이다. ‘국풍 81’ 대학가요제에서 이용이 정치적 이유로 금상에 그친 것도 그 때다. 그렇게 희망이 허무하게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나라꼴은 여전하다. 달라진 게 없다. 희망은커녕 절망과 부끄럼만 안기고 있다. 타국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요즘 점점 높아지는 “미국 잘 왔다”는 목소리가 거슬린다.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닌데. ‘그러려니’ 하자니 서글픔만 더하다. 고국의 앞날은 어찌되는 것일까? 삶은 생각하기 나름. 잘 되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읊조리며 와인이라도 한 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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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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