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다. 화랑들을 다녀 보고 리포트를 써야 했다. 몇 몇 학우들과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하루종일 갤러리를 돌고 녹초가 되어 아주 트랜디한 바에 앉게 되었다. 주문을 하는데 전부 피냐콜라라니 핑크레디니 하는 칵테일을 시키는데 아직도 한국의 생맥주를 그리워하던 나는 자신있게 버드와이저를 시켰다. 그랬더니 누군가 ‘하! 넌 맥주를 마시는구나, 그것도 버드와이저를!’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면구스런 자리가 됐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맥주를 시키면 남학생들이 있는 척 한다고 핀잔 주는 때였다. 미국에서 맥주를 마시는 층이 대부분 노동자라는 걸 몰랐던 거다. 보이는 게 없고 세상의 모든 미적 가치를 난도질하고 작살내는 게 사는 재미였던 젊은 미대생들 앞에서 버드와이어를 시키는 촌스런 아줌마의 민망함! 맥주래도 독일의 수입품을 주문했어야 했다.
입 맛이란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취향이란 게 실은 사회의 각 계층의 사람들이 무언 중에 합의를 본 공동의 심볼이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politically correct 란 단어가 있다. 한국말로 번역하기 참 곤란한 단어인데 대중의 입맛, 혹은 그냥 ‘그 때 그 사회에서 인정되는 상징적 취향’이란 단어로 설명이 될까?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리에 꽃을 달면 자유로운 영혼의 표지가 되지만 한국에선 머리에 꽃을 꽂으면 미친 여자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나 입 맛으로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보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비싼 옷이나 핸드백, 수입 차, 산 속의 집을 갖고 싶어들 하지만 그런 속에도 각자의 취향은 각각이며 그것을 선택하는데는 각자의 가치관에 달려있다. 부자 중에도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재력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회에 좋은 쪽으로 쓰는데에 보람을 느끼는 이도 있다.
취향은 재력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화려하고 바글대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하면 절간처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 무리 속에서 눈에 띄는게 좋은 이도 있고 사람속에 숨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은 이도 있다. 헤이즐넛 향을 좋아하는 사람, 헤이즐넛 향을 싫어하는 사람,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 수수한 차림새가 편한 사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집에 있는게 좋은 사람, 캠핑의 거친 맛이 좋은 사람, 호텔의 안락함이 좋은 사람, 무숙자가 안쓰러운 사람, 혐오하는 사람, 개그콘서트가 재미있는 사람, 재미없는 사람, 트롯트가 좋은 사람, 클래식이 좋은 사람... 세상사 많은 것이 단순히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 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취향은 사회적 신분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가끔 진정으로 오페라를 좋아하는 타고난 가난한 음악가도 있지만 대부분 오페라를 간다 하면 멋있어 보여 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루이비통을 메고 벤츠를 굴린다 해서 꼭 부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고 부에 대한 선망때문에 용쓰는 경우도 있을 터이다 .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시간이 남아 어정거리다 벽에 붙여논 수배자들의 사진을 보니 살인이나 폭력, 성폭행자 들의 얼굴은 대부분 인상이 험한데 사기로 수배된 이들은 단정하고 순해보이고 배운 사람같다. 용쓰다가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서울, 강북의 조그만 호텔에 와 있다. 사람들이 엄청 많다. 골목마다 조그만 상점들이 어깨를 비비며 섰고 바쁘게 걷는 행인들 사이로 자동차들은 감탄할만한 기술을 뽑내며 지나간다. 보고있으면 재미있다.
저녁이 어스름해 지면 작은 음식점들이 전부 술집이 되어 길가에 내놓은 탁자위에서 꼼장어며 닭발등을 굽는 연기가 자욱하다. 같은 강북이래도 몇 블럭 너머의 동대문 패션 거리엔 키가 180은 쉽게 될 남자 애들이 귀에는 작은 귀고리를 몇 개씩 하고 레깅스에 치렁치렁한 코트, 부츠를 신어 모델 같은 차림으로 몰려 다닌다. 전부 케이 팝 아이돌 같다. 촌에서 갓 상경한 늙은이는 마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경꺼리다. 자신이 잘나고 세련된 줄 알고 살던 젊은 처자는 미국생활 사십 여년 후, 입 맛도 취향도 잡탕이 되어 버린 할머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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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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