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남 광양에서 “아파트 경비원은 집지키는 개”라며 10여살 연상의 노인 경비원에게 두 시간가량 행패를 부린 60대 주민이 입건돼 벌금을 물었다. 전남 경찰청은 50일간 ‘갑질’ 특별단속을 벌여 38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 6월 전국적으로 성인 1,04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갑질 당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인권평등사회여서 그런 꼴 겪지 않으니 이민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에도 갑질이 있다. 오히려 더 눈꼴시다. 한국 갑질은 출세하거나 돈을 벌면 피할 수 있지만 미국 갑질은 근원적이다. 타고난 피부색깔로 기준을 삼기 때문이다. 툭하면 흑인이 경찰 총에 맞아죽는다. 인종 갑질을 규탄하는 ‘을’들의 시위가 매일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아시아인은 차한에 부재라며 자위하면 더 큰 오산이다. 바로 지난 일요일 뉴욕 맨해튼의 차이나타운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온 중국인 가족이 인근 한국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지독한 갑질을 당했다. 아기 유모차에 통행을 방해당한 한 잘 차려입은 백인여성이 버럭 화를 내고 쌍시옷 욕을 들먹이며 “네 나라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고함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갑질 대상을 잘 못 골랐다. 그 중국인은 뉴욕타임스의 인종문제 담당 마이클 루오 사회부 차장이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에는 ‘우리 가족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여인에게’라는 루오의 공개서한이 게재됐다. 그는 “흔한 일이어서 참거나 ‘다른 쪽 뺨’을 돌려댈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선거철의 정치기류 탓인지 기분이 너무 나빴다”고 썼다.
대만 유학생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 형제가 모두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루오는 “얼마나 성공했건, 직업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이방인으로 간주된다. 아시아인에 대한 이런 타인관념(otherness)이 미국사회에 편만한 게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특히 “우린 중국에서 안 왔는데 왜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거야?”라는 7살 딸의 물음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루오의 공개서한은 뉴욕은 물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개서한에 앞서 비슷한 인종 갑질을 당한 아시아인들의 경험담을 담은 그의 페이스북 동영상은 11만명 이상이 조회했다. 특히 루오가 뉴욕타임스 인터넷 판에 각계 아시안 인사 7명(한인은 없음)을 초청해 진행한 채팅 토론은 미국인들의 고질적 타인 관념을 심도 있게 다뤘다는 평을 들었다.
그레이스 멩 연방 하원의원(민·뉴욕)은 자신이 그런 갑질을 당했더라도 두 자녀의 장래를 위해 의연히 맞섰을 것이라고 했고, 역사학자 에리카 리는 아시아 인종들끼리도 서로 갑질을 한다고 꼬집었다. 인종 갑질의 근본대책으로 크리스 쿽 변호사는 초중고교의 인종 교육 강화를, 인도계 방송기자인 아룬 베누고팔은 아시아인의 정치파워 신장을 각각 꼽았다.
수많은 독자들도 이 채팅 토론에 참여했다. 한인 한나 K(뉴욕)씨는 “참아주는 만큼 당한다. 루오가 맞선 것처럼 우리 모두 목소리를 더 높이고 더 조직적으로 대응해야한다”고 코멘트했다. 한인 폴 박(덴버)씨는 미국인들이 “어? 영어를 썩 잘 하시네” “브루스 리처럼 쿵푸도 잘 하시나?”라며 인종차별 항의를 우스개로 넘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달 초 폭스 뉴스채널도 중국인들에게 갑질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방송의 ‘오레일리 팩터’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 제시 워터스가 뉴욕 차이나타운 주민들에게 “나도 허리 굽혀 인사해야 하느냐” “장물을 파느냐” “우리 대신 북한에 신경 좀 써줄 수 없느냐”는 등 헛소리를 늘어놨고, 영어를 못하는 노인들에게 “말 좀 해보라”며 조롱했다.
한인들도 대부분 인종 갑질을 당해봤을 터이다. 나도 오래전 테니스코트에서 미국인으로부터 “당신들 지금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느냐”는 핀잔을 받았다. 우리 후세들도 계속 당할 터이다. 한나씨가 말했듯이 참을수록 더 당한다. 한인이 갑질을 당할 때마다 한인사회 전체가, 아니 이번 루오 케이스처럼 아시안 커뮤니티 전체가 결연히 일어나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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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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