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선은 이미 파장 분위기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사이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판세를 뒤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각종 여론 조사를 종합해 보면 지지율에서 힐러리가 6~7% 포인트 앞서 있고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경합주 거의 전부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최소 330명의 선거인단을 얻어 당선에 필요한 270명을 훌쩍 넘기게 된다.
이런 결과는 당내 경선 동안 보여준 멕시칸, 이민자, 여성, 장애인에 대한 트럼프의 막말, 세 차례 토론 중 보여준 트럼프의 준비 부족과 빈 머리, 그리고 최근 터져 나온 트럼프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자인한 비디오 테입, 이와 함께 제기된 10명이 넘는 여성의 성희롱과 성추행 증언 등을 감안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진짜 놀랄 일은 이토록 자격 없고 저질 찌질이 후보에게 미국 유권자의 40%가 아직도 지지 의사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힐러리가 밉다고 이런 무자격자에게 미국의 장래를 맡길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미국 유권자의 수준과 앞날에 깊은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힐러리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선거 초반부터 터져 나온 이메일 스캔들은 힐러리의 에센스를 드러내 준다. 힐러리는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단지 편리를 위해 개인 이메일과 서버를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이는 사실이 아니고 자신이 만든 클린턴 재단과 자신이 이끌던 국무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사연을 감추기 위한 것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재단 고액 기부자와 힐러리와의 면담이 주선되는 등 특혜를 준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이는 결국 공직을 자신 개인 재단 모금에 이용한 것이고 이를 위해 미국의 기밀을 해커들에 노출시킨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럼에도 힐러리는 오랫동안 온갖 거짓말을 거듭하며 3만 통의 이메일을 삭제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메일 스캔들 조사 과정에서도 힐러리 측은 철저히 수사에 비협조적이었고 법무부는 수사 진행 상황을 힐러리 측에 알려주는 등 특혜를 줬으며 단 하나의 기밀을 누설한 장성은 중벌에 처하면서도 수 백 건의 기밀을 누출 위험에 빠트린 힐러리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30년에 걸친 클린턴 부부의 정치 경력은 화이트워터부터 르윈스키를 거쳐 이번 이메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 이런 스캔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힐러리는 한 번도 순순히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다. 남편과의 불륜을 폭로한 여성들을 공격하거나 이를 “거대한 우파의 음모”로 몰아부쳤다. 힐러리가 백악관에 들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대선 참패가 확실시되는 트럼프는 결국 대선 불복 카드를 빼들었다. 미국 대선 판이 워낙 불공정하고 조작됐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자신이 이겼을 때만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트럼프다운 발상이다. 그토록 불공정해 결과가 뻔한 대선이라며 애초에 후보로는 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이 그녀의 본질을 보여주듯 이번 불복 발언도 트럼프 인생 역정의 결론이다. 아버지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한 후 상습적인 파산으로 부채를 털고 이를 이용해 수 십년간 연방세를 한 푼도 안 낸 그는 잘 된 것은 자기 탓이고 안 된 것은 남 탓으로 돌리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70년을 살아온 인간이 이제 와서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승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올 대선에 나온 두 주요 정당 후보들은 여론 조사가 실시된 이래 가장 비호감이며 믿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힐러리를 미 국민의 2/3가 믿지 않고 있다. 오로지 트럼프보다만 나은 성적이다.
미 국민이 자유의사로 택한 최고 지도자가 힐러리와 트럼프라는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 국가인 미국이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말해준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드 메스트르의 진단은 옳다. 미국을 망하게 하는 것도, 흥하게 하는 것도, 결국은 미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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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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