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대통령, 미르·K재단 “불법 엄정 처벌” 수사 지시
▶ 야권 “수사 가이드라인 준 것”… ‘게이트’로 번지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연합]
눈덩이처럼 커지는 최순실씨와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두 재단의 출범 취지는 옹호하면서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시해 수사 결과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당 내부에서는 “최씨 호가호위 의혹을 조속히 털고 가지 않으면 대선 승리는 어렵다”면서 철저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설립한 서울 청담동 ‘더블루케이’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연합]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 최순실씨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채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더 이상 의혹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감독기관이 감사를 철저히 하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지도·감독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당초 두 재단과 관련, 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무대응이나 반박으로 일관하다가 처음으로 재단 운영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최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9분여 동안 두 재단에 대해 언급하면서 재단 출범의 긍정적 취지를 강조하고 ‘인신공격’에 대한 우려도 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 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저의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들어졌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면서 “저는 소임을 다하고 제가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사심도 없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최씨 의혹 등에 대해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채 두 갈래의 메시지를 던지자 언론들의 보도 방향도 엇갈렸다.
21일자 조간신문의 제목들을 보면 ‘최순실씨 의혹 수사 지시’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등 두 갈래로 나뉘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선 실세 논란이 제기되는 최순실씨 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 뜻을 밝힌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비선 실세 의혹 대책위의 박범계 의원은 “아주 구체적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엄정 처벌’ 의지를 밝힌 것은 최씨 관련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최씨가 직원이 거의 없는 ‘비덱스포츠’ ‘더블루K’ 등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서 대기업 모금으로 만든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사업을 따내려 한 의혹들이 최근 추가로 제기되면서 파문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야권은 “최씨가 K스포츠재단을 활용해 딸의 독일 승마훈련을 지원하려 한 것”이란 의혹까지 제기했다. 게다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시와 학점 특혜 의혹이 불거져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사퇴하고, 이들 모녀의 막말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국민 정서를 건드렸다.
또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씨 의혹 확산 등으로 취임 이후 최저를 기록한 것도 엄정 처벌 의지를 밝힌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10월 3주차 주중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 주보다 4.2%포인트 급락한 27.2%로 이 기관 조사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주(11~13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26%로 집계됐다.
여권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은 공식 라인 참모의 의혹보다도 이른바 비선 실세의 호가호위와 비리 의혹에 대해 더 분노한다”면서 “역대 대통령의 아들이나 핵심 측근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지만 최씨가 박 대통령 이름을 팔아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비리를 저지른 게 사실이라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동생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관계 단절까지 했는데 최씨 의혹 확산을 막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임기 말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호가호위를 통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털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언급 이후 새누리당에서는 비박계 외에 일부 친박계에서도 최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 수사가 부실하면 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 등을 주장하면서 최씨 의혹을 장기전으로 끌고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씨 의혹을 조속히 털어내야 ‘개인 비리’로 저지선을 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두 재단 및 최씨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시민단체 고발에 따라 두 재단 수사를 맡아 온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담당 검사를 증원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검찰은 21일 K스포츠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정동구 한국체대 명예교수와 미르재단 설립·운영에 관여한 실무자 2명 등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또 최씨와 두 재단 관계자들 간의 통화 내역도 확인하고 있다.
검찰 수사의 강도에 대해선 세 갈래 전망이 있다. 수사 결과 두 재단의 일부 실무자를 사법 처리하는 수순으로 마무리될지, 최씨 ‘개인 비리’ 처벌로 한 발 더 나아갈지, 아니면 전면적인 ‘권력형 게이트’로 번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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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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