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의 수는 37조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에 있는 별 수가 1,000억 개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면 370개 은하계에 있는 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세포가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셈이다.
오늘 우리 몸과 내일 우리 몸은 똑같은 것 같지만 세포의 수준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다. 하루 평균 500억에서 700억 개의 세포가 죽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매일 다른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고등 생명체의 세포에는 자기 파괴 기능이 장착돼 있다. 때가 되면 세포에 죽음을 알리는 메신저가 찾아온다. 통고를 받은 세포는 스스로 조용히 해체 작업에 들어 간다. 이를 의학 용어로 ‘어포토우시스’( apoptosis)라 부른다. 그리스 말로 ‘(낙엽 따위가) 진다’라는 뜻이다. 때가 되면 말없이 떨어지는 낙엽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모양이다.
이렇게 해체된 세포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새 세포 생성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를 ‘오토파기’(autophagy)라고 부른다. 역시 그리스 말로 ‘스스로 먹는다’는 뜻이다.
20여 년 전 세포의 자기 식사 과정을 연구해 독보적인 분야를 개척한 도쿄 테크놀로지 연구소(TIT)의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올해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80년대 말 도쿄대에 있던 오스미 교수는 손상된 단백질과 소기관을 제거해 이를 분해한 후 새 세포의 원료로 사용하는 15개 유전자를 발견했다.
낡은 세포를 분해해 새 세포로 만드는 작업은 생명체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죽을 때가 됐는데 죽지 않고 계속 퍼져 나가는 것이 바로 암세포다. 손상된 단백질이나 세포 노폐물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을 때는 기억 상실을 유발하는 알츠하이머병이 찾아온다. 오스미의 ‘자기 식사’ 과정에 대한 연구는 백혈병과 알츠하이머, 파킨슨 병 치료약을 개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오스미의 연구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데도 깊은 통찰을 주고 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세포의 차원에서 보면 죽음과 부활은 매일 매일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인간의 몸이 낡고 병든 세포를 분해해 새 세포의 원료로 쓰는 것은 그것이 개체의 건강을 보존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에 ‘자기 식사’ 기능이 없다면 심장병부터 암까지 온갖 병에 시달리다 일찍 죽는 수밖에 없다. 반면 이를 촉진하는 약이 개발된다면 질병의 공포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도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는 ‘열역학 제2 법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칙은 어려운 것 같지만 아주 간단하다. ‘가만 놔두면 무질서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은 이 법칙이 얼마나 옳은 지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낡고 병드는 생로병사의 철칙을 비껴 갈 수 없다. ‘자기 식사’는 이 과정을 조금 늦춰 보려는 생명체의 시도다.
시간이 돼 개체의 생명이 다 하면 개체는 사라지지만 그 몸을 이루고 있던 물질마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고 몸이 돼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만화 영화 ‘라이언 킹’에서 무파사가 말 한 것처럼 사자는 얼룩말을 먹지만 그 사자가 죽어 썩으면 풀의 영양분이 되고 그 풀을 다시 얼룩말이 먹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오스미는 인간의 몸은 “늘 자기 해체와 자기 식사 과정을 되풀이 하며 생성과 분해 사이에는 정교한 균형이 이뤄져 있다”면서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옳은 말은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크게 보면 개개의 인간은 큰 생명나무에 달린 이파리에 불과하다. 때가 되면 낙엽으로 져 나무의 영양분이 되는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 사망 120주기를 맞아 생명의 진실을 밝힌 오스미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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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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