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생긴다. 주로 기억에 관련된 사건들이다. 최근 아내가 자기 차로 나를 골프장에 내려주고 간 적이 있다. 클럽하우스에서 골프 값을 지불하려고 보니 동전 몇 개뿐이었다. 허둥지둥 오느라 지갑을 깜박했다.
아내는 운전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차가 없어 집에 갈 수도 없고, 돈이 없어 골프를 칠 수도 없어 망설이는 나에게 골프장 매니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You must have the Senior Moment, Sir(어르신 깜박하셨군요)”라며 오늘은 그냥 치고 다음에 합쳐내면 된다고 했다. 난생 처음 외상 골프를 치려니 다른 골퍼들 보기가 민망스러워 등에 땀까지 적셨다. 물건 놓은 장소를 잊었거나, 어떤 장소에 왔는데 왜 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거나. 자주 만나는 사람 이름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거나, 이틀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생길 때 노인들이 쓴웃음 지으며 중얼거리는 표현이 ‘시니어 모먼트’다. 하지만 잠깐 생각을 정리하면 쉽게 기억을 해낼 수 있다.
이같이 잠시 동안의 기억소실이 건망증으로 정상적인 노화과정의 하나이다. 건망증이 후에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 여부는 누구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건망증 증세가 심하지 않아 좀 지켜보자고 하면 어느 노인은 화를 내며 정밀검사 받기를 고집한다. 그런 분들을 ‘건강 염려인(Worried Well)’이라 부른다. 심한 케이스는 의사가 괜찮다고 해도 믿지 않고 의사 샤핑을 다니는 건강염려증 환자들이다.
건망증과 치매 중간이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다. MCI는 나이와 교육수준이 비슷한 또래에서 유달리 건망증이 심해지고 다른 인지기능(계산력, 새로운 지식과 기술습득의 어려움 등)의 경미한 저하를 보이는 증세다. 그럼에도 일상의 생활을 스스로 유지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경도인지장애가 모두 치매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통계에 의하면 많게는 50% 이상, 적게는 10-15%지만 최근 저명한 미 뇌학자들은 20-25%로 추산한다. 어떤 MCI가 치매로 갈지, 진단기준은 무엇이며, 치료는 어떻게 하는가는 아주 중요한 이슈다.
치매로 가는 MCI를 정확히 검사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진단은 환자의 주관적 인지기능 저하와 세밀한 종합 신경심리검사, 그리고 몬트리올 인지기능 테스트에 바탕을 둔다. 인터넷에서 몬트리올 인지기능검사를 클릭하면 쉽게 찾아서 자가 평가를 할 수 있다.
몬트리올 인지기능 평가 검사는 인지기능 중에서도 집행능력 기술을 알아보는 검사다. 치매환자들의 주 증상이 기억상실이지만 집행능력도 중요한 증상 중의 하나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들이 모여지고 통합되는 곳이 전두엽이다. 이곳에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일의 순서를 정하고, 추리와 판단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집행기능이 이루어진다. 또한 이런 기능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집중력 유지와 충동억제 기술이 필요하다.
80대 중반의 혼자 사는 여자 환자가 있었다. 최근 들어 물건들을 자주 잊어버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데 말이 잘 안나오고, 방문한 친척친지들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 약들을 복용했는지 여부조차도 잘 몰랐다. 딸이 어머니 집에 와보면 식탁 위에는 어제 저녁 음식들,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접시들이 널려있고, 아파트 문도 가끔 열려있었다.
임상적 증세만으로도 환자는 치매 초기를 넘어 섰다. 알츠하이머 등 대부분의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는 뇌질환이므로 이분을 이때까지 방치해 둔 것은 잘못이다. 전화로만 건강을 묻지 말고 직접 부모님을 자주 방문하여 식사는 잘 하시는지 잠은 잘 주무시는지 약은 규칙적으로 복용하는지 등을 점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알츠하이머는 치료방법이 없지만 지난 25년의 연구결과가 예방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뇌 조직 속의 두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Tau)가 뇌 조직에 쌓인 결과로 알츠하이머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제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어떻게 하면 뇌조직 속에 두 단백질이 덜 쌓이게 할까, 일단 쌓인 단백질을 제거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약물의 발견과 단백질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조작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파란 불이 켜지리라 믿고 싶다. 그러면 ‘시니어 모먼트’도 ‘워리드 웰’도 적어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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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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