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법이 생겼다며 남편이 읽던 신문을 건네준다. ‘먹튀 자식 방지법’. 마치 유머 같은 제목의 이 법은 지난해 9월에 발의되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한다. ‘먹튀’는 먹고는 튀어서 도망간다는 뜻으로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에 ‘자식’이 붙어서 ‘먹튀 자식’이라니. 굳이 기사를 읽어보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
효도 계약서까지 써 와서 여생을 잘 모시겠다는 아들에게 상가도, 땅도, 집도 모두 넘겨준 노부부 이야기다.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부부는 이 후 태도가 달라졌다. 허리를 다쳐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 병간호는커녕 끼니도 챙겨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노부부가 이층집을 오르내리기가 힘드니 독립할 아파트 살 돈을 달라고 했다.‘천 년 만 년 살 것도 아니면서 무슨 아파트’ 라며 요양원에 가라는 아들의 반응은 횡포에 가까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버지가 재산반환 청구소송을 했고 대법원에서는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인간에게 ‘효도’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사랑은 물과 같아서 아래로 내려가기만 하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본능이지만 부모에게 올리는 자식의 사랑은 의지이고 노력이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라는 저서에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어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정립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욕망은 자기 내부의 ‘자발적인 욕망’이 아니라 어떤 중개자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신문기사를 읽으니 효도란 것도 바로 이 욕망의 삼각형 구도가 말하는 거짓 욕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자식의 도리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녀에게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만, 부모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단지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만 하셨다.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효도는 본능적인 욕망이 아닌 것을 아시기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공경하라’라는 명령을 십계명에까지 명시하신 것이 아닐까.
중국은 노인 노(老)자 아래 아들 자(子)를 써 자식이 노인을 떠받드는 모양으로 효(孝)라는 글자를 만들었고, 영어권에서는 ‘Filial Piety’라는 말로 효도는 곧 부모를 사랑하며 존경, 순종하고 도와주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효를 모든 덕목의 최우선, 최고의 가치로 삼은 것은 ‘효’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발생적인 행위가 아닌, 인간의 의지와 노력 없이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인간은 노쇠하고 병들면 ‘누군가’의 수발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누군가’가 현대 사회에서는 병원이나 양로원이 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오로지 자식 밖에 없었다. 여태까지는 그 사회적인 통념이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현대는 그게 아니다. 1998년 한국 통계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명 중 9명이 ‘노부모 부양책임은 자녀(가족)에게 있다.’ 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어 2014년에는 3.1명만이 노부모 부양책임은 자녀(가족)에게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변해가는 세태에서 사람들은 베이비부머 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한다. 부모 봉양을 의무로 알고 섬겼고, 자식에게서는 효도를 받지 못 하는, 두 가치관 사이에 끼여서 희생만 당하는 세대라는 뜻이다.
이제 은퇴를 하고 더 이상의 경제활동이 어려운 샌드위치 세대인 우리들은 ‘먹튀 자식 방지법’까지 만들어 노년을 지켜주려는 이 세태를 관망만 할 것이 아니다. 얼마나 심각하면 정부까지 나서서 법제화시키려고 할까하는 위기감도 가져야 한다.
노년을 잘 보내고도 자산이 남아 자녀들에게 넉넉하게 물려줄 수 있을 정도면 다행이지만 만일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생각을 다잡아야한다. 더 이상 자식의 인생에 엮여 심신으로 고달픈 노년을 맞는 어리석은 부모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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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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