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매체의 홍수시대다. 매체(media)란 글자 그대로 외부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안방에 있는 내게 전달해주는 도구를 의미하는데, 이 시대가 그 도구의 다양성으로 인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일 게다. 특히,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인터넷의 발달은 그 자체의 혁명만이 아닌, 그것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삶에도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언제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글과 영상들을 내 맘대로 접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겠는가?이런 상황에서 요사이 내게 찾아든 새로운 심리적 상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수동적 부담감 같은 것으로서, 내게 뜨는 모든 글은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다. 매일 대하는 종이 신문에서부터 책꽂이 안의 즐비한 책들까지, 그리고 오늘도 손가락으로 밀기만 하면 거침없이 쳐들어오는 전화기 속의 글들까지, 이걸 언제 다 읽어야 하나 하는 게 바로 그 마음이다. 물론 그 부담감은 결국은 다 읽지 못할 걸 뻔히 알고 있을 때 더 커진다.
얼마 전 사무실 공간을 잃게 된 난 그 동안 소장해온 많은 책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집의 비좁은 공간으로 책을 옮겨야 하니 책 상당 분량을 버리는 죄를 범해야 했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순간은 버려야 할(될) 책들을 선별할 때였다. 그런 혼란과 함께 일단은 너무 오래 된 책이 강력한 1순위 후보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노안이 와 읽기 힘든 판에, 누렇게 바랜 종이에 깨알 같은 활자로 된 구서(舊書)들이 내 손에서 떨어지는 데에 1초도 안 걸렸다.
그다음 후보는 지금까지도 읽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전혀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들이었다. 그런 책들을 찾아내어 쓰레기통으로 집어넣는 것 역시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허나, 여기서 생기는 독특한 역설적 속상함이랄까? 그 속상함이란, 읽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구입했으며, 왜 그 많은 에너지를 들여가며 이사 때마다 낑낑대며 갖고 다녔을까 하는 거였다.
아무튼 그 덕에 한결 가벼워졌다. 맘도 몸도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고 보는 일이 줄어들었는가? 아니다. 난 여전히 새 책을 구입하고 있으며, 여전히 아이패드와 아이폰으로 더 많은 읽을거리와 볼거리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줄어들 줄만 알았던 나의 ‘수동적 부담감’은 더 늘어나고 있으니 이건 도대체 뭔 일인지….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를 느낀다. 글 읽는 건 내 영혼의 성숙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내 영혼은 실제로 계속 더 성숙해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 풍성한 글들을 접하면서도, 한 노래의 표현처럼, 내 안에선 더 많은 가시가 자라고 있는 것만 같다. 오히려, 책 한 권 값이 집 한 채 값이었던 중세 대학 시절의 학도들이 훨씬 더 성숙한 삶을 살았던 걸 알게 될 때 그 좌절감은 더해진다.
어쩔 땐 읽는 것 자체가 목표일 때가 있다. 일종의 성취감 같은 거랄까? 나 그거 읽었다, 나도 그거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말할 수 있다, 등등을 위한 글 읽기와 정보 접하기 같은 것이다. 순수하게, 정말 순수하게 내 영혼의 성숙을 위해 글을 읽는 거라면, 그 근처까지 갈 필요도 없는 쓰레기 같은 글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그런 점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꼭 읽어야 할 것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선별의 지혜 같은 것이리라.
얼마 전 한 기사에서 본 안타까운 소식이다. 한국인들의 평균 독서량은 1년에 책 한 권 수준이란다. 귀를 의심하라. 한 달이 아니라 1년이다. 이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그게 대학생들의 전공서적이나 주부들의 여성잡지를 포함시킨 거라니, 독서의 질(quality) 문제까지를 고려할 때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다분히 문제가 있는 수치이다.
독서를 권하면 다들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한다. 조금만 어려운 문장들이 나오면 거의 정죄(定罪) 수준으로 그 책을 비난하며 덩달아 독서의 불필요성까지 역설한다. 내 개인의 소망은 이렇다. 첫째, 글이란 글은 다 접해야 한다는 수동적 부담감에서 일단 벗어나는 것.
둘째, 에너지 소모가 전혀 아깝지 않은 글을 담아낸 양서(良書)들을 만나는 것.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부는 요즈음, 선배들이 괜히 이때를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책 중의 책’인 ‘성경’을 비롯해, 내 인생을 바꾸며 내 영혼을 살찌게 하는 양서들을 만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영혼이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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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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