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스카이라인의 꼭지점인 63빌딩이 버티고 선 여의도에서 63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김정열 국방장관을 비롯해 김신 공군참모총장 등 장성들이 허허벌판 여의도의 미 공군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있었다. 요즘 미국의 많은 한인교회들이 그렇듯이 당시 한국공군의 크리스천 장병들도 자체교회가 없어 미 공군교회를 빌어 사용했다.
강단에 선 30세의 새파란 공군군목이 나긋나긋이 설교하다가 앞자리의 고관대작들을 향해 큰소리로 “회개하십시오. 지금 이 나라는 온갖 부정부패로 썩어 있습니다. 빨리 척결하지 않으면 자유당 정부는 오래 못 갑니다”라며 일갈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유망한 젊은 장교 하나 잃게 됐다고 걱정했다. 자유당 총재와 직속상관들 면전에서 ‘오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이 대통령은 그릇이 컸다. 예배 후 강단에서 내려온 임동선 군목(대령)을 웃으며 껴안고 “설교 참 좋았소. 감명 많이 받았소”라고 칭찬했다. 일행에게도 오늘 설교내용을 가슴에 새겨두라고 일렀다. 한국 초대 군종감인 임 대령의 애로사항을 들은 이 대통령은 대방동에 신설될 공군본부에 공군교회부터 짓도록 국방장관에게 즉석에서 지시했다.
그보다 훨씬 전의 청년 임동선은 서울역의 지게꾼이었다. 서울신학대학을 고학으로 졸업했다. 그보다 더 험난한 세월도 겪었다. 북한에서 막일을 하다가 사상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평양감옥에 갇혔다. 그때 그 감방에서 “너는 죽지 않고 자유의 몸이 돼 내 종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들었고, 실제로 김일성의 특사로 풀려나 6^25 직전에 월남했다.
지난 주말 그 임동선 목사 장례식이 본인이 창립한 LA 동양선교교회에서 엄수됐다. 지난달 24일 93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여의도 사건’후 63년 만이다. 목사님의 비보를 믿을 수 없었다. 원체 건강하셨기 때문이다.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목사님이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10여일 만에 숨을 거뒀다고 목사님 조카인 임승표 장로가 전해줬다.
임 목사님은 ‘미주 한인교계의 거목’으로 불린다. 이제 그 거목이 ‘전설’이 됐다. 미국 유학시절인 1970년 7월 어른 15명과 어린이 15명을 자택에 모아 동양선교교회를 개척했다. 첫날 모은 헌금 400달러를 본국 농어촌교회에 보냈다. 임 목사는 한동안 인쇄소에서 일하며 사례비를 받지 않았고, 임재순 사모(2000년 소천)는 수십년간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불과 4년 후 당시 수퍼마켓이었던 현 교회건물을 62만5,000달러에 매입했다. 모기지를 감당 못해 되팔자는 원성이 터졌지만 한 장로가 일어나 “우리가 피를 팔자”며 소매를 걷어붙여 감동의 울음바다를 이뤘다. 그 후 교회는 무섭게 성장했다. 출석교인이 10년차부터 매년 1,000여명씩 늘어나 내가 임 목사님에게 세례 받은 1982년엔 4,000명을 헤아렸다.
다음해 창간한 교회신문 ‘동양선교 헤럴드’의 편집위원이 된 나는 목사님을 더 자주, 더 가까이 보면서 ‘목사 임동선’보다도 ‘인간 임동선’에 더 끌리게 됐다. 진실하고 겸손하고 검소하고 근면했다. 마켓 창고였던 그의 좁아터진 사무실은 창문이 없고 바닥도 삐걱댔다. 낡은 뷰익 승용차를 타고 다녔고, 새 신자를 샌프란시스코까지 직접 태워다준 적도 있다.
불가사의하게도 그 많은 교인들의 가족이름을 줄줄 꿰었다.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했다. 자택을 팔아 한인청소년회관 건물기금으로 기부했다. 교인들이 주는 ‘용돈’이나 시계, 구두, 양복 따위 선물권은 으레 부목사와 전도사들 몫이었다. 지구촌 55개국 1,100여 곳에서 집회를 인도했고, 바쁜 와중에 ‘땀은 흘러도 기쁨은 샘물처럼’ 등 11권의 저서를 냈다.
요즘 미국교계는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동성애 목사를 세우는 추세다. 한국에선 목사들의 재정 비리와 섹스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다. 평생을 모세와 바울처럼 산 임 목사님의 타계가 그래서 더 아쉽다. 그는 한인이민 100년사의 ‘위인 10명’에 포함됐다. 앞으로 올 100년간에도 독재자 대통령을 면전에서 꾸짖을만한 담대한 한인목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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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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