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선거판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평소 같으면 선출직이든지 임명직이든 간에 공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대통령후보를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현재 힐러리 클린턴과 거의 백중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공직이라곤 가져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도박장 사업과 관련해서는 여섯 번이나 파산선고를 했고 40년 이상 대통령 후보들의 세금보고를 공표하는 전통을 어겼으며 입만 벌리면 막말과 거짓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오는데도 클린턴이 고전을 하고 있는 이 상태를 어찌 이해해야 될까? 두고두고 연구거리가 될 듯하다.
하나의 가설로는 ‘정치의 오락화’가 있다. 영상 미디어 특히 TV가 안방 중앙에 자리 잡은 이후 그리고 2000년대 초부터의 소셜 미디어 발호 아래서 누구든지 미디아의 각광을 받아 사람 입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우중(愚衆)을 쉽게 현혹 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트럼프는 견습생(The Apprentice)이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스타로서 20년 경력을 쌓아왔다. 감수성이 강한 젊은 층은 그의 영향을 받아 전통 도덕으로부터의 이탈이 심해지고 미디어와 대중의 상호작용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동성의 결혼이 정상적인 것으로 대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힐러리가 정치적인 야망이 있기 때문에 빌 클린턴의 불륜 행각들을 용서함으로써, 백악관 집무실과 클린턴을 생각하면 그의 부도덕한 짓을 떠올릴 정도로 남편의 부도덕을 조장했다는 비난은 받을지언정 그 자신의 도덕성은 의심받지 않는다.
트럼프는 두 번 이혼에 세 번째 결혼한 것은 약과이고 자신의 자서전이나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러 기혼 여자들과 불륜 행각을 저질러온 것을 뻔뻔스럽게 되뇌기를 서슴지 않았다. 여러 여자들과의 정사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게 우중들에게는 매력적인 모양이다.
트럼프도 그렇지만 정치의 오락화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지방선거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과 보도에서 두 예를 볼 수가 있었다. 그 하나는 버지니아 주 수도 리치몬드 시장 선거후보에 관한 기사였다. 시장 후보자들이 7명 뛰고 있는데 조 모리시(59·민주)가 여론조사에서 1위란다. 마치 트럼프가 다른 후보 같으면 실격되었을 말과 행동의 실수를 연속해도 끄떡없는 것처럼 모리시의 행적도 해괴하기 짝이 없는데도 선두를 달린다니까 참으로 불가사의다.
모리시는 리치몬드 검사를 지냈던 백인 변호사인데 변호사 자격을 8년 동안 정지당했던 역사가 있다. 그는 20대 세 자녀들의 아버지이기도 한바 아이들의 엄마가 각각 다른 혼외자식들이란다. 그가 55세 때 자기 변호사 사무실의 17세 된 흑인 사무원과의 관계로 아이를 가지게 만들어 미성년자의 부도덕에 방조했다는 죄로 1년 반 형기를 살기도 했다. 모리시는 이제 20세 된 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또 하나 가지게 된다. 그 네 식구가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선거운동에 사용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는 2011년에 당선되어 작년에 재선된 메인 주지사 폴 르페이지(공화)란 사람이다. 르페이지는 백인 우월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주지사에 당선되자마자 마틴 루터 킹 박사의 기념식에 참석하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전국위원회(NAACP)의 대표들과의 회합도 거절했다. 그리고 흑인들에 대한 막말이 도를 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예를 들어 메인주의 마약 만연에 대해 코네티컷과 뉴욕에서 올라오는 흑인들이 마약을 팔고 돌아가는바 그들 중 반은 가기 전에 젊은 백인 여자아이들을 임신시키고 간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 같은 주장의 근거에 대해 추궁받자 그는 자기의 자료에 의하면 (마약 밀매자들의) 90% 이상이 흑인 아니면 히스패닉이라고 강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뽑은 유권자들의 정신상태가 아리송하다.
미국 주류언론이 트럼프의 자격 부족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니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지지자들은 더 열광한다. 이런 열광을 만끽하는 그가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어 미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를 소란스럽게 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뒤숭숭한 잠자리가 아직도 30여일이나 더 계속돼야 한다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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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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