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에 행위 예술가 샬롯 무어맨(1933-1991) 에 대한 기사가 났다. 첼리스트였던 그녀는 오노 요꼬를 비롯한 행위 예술가들에게 매혹되어 아예 그 세계로 들어가 아방가르드 예술의 프로모터로 나섰다가 백남준을 만나며 자신도 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활동을 했다 한다.
백남준이 티브이 모니터를 자신의 캔바스로 삼듯 그녀는 첼로를 자신의 화폭으로 삼았나 보다. 벌거벗은 백남준을 마치 첼로인듯 부둥켜 안고 첼로를 켜는 시늉을 하는 사진이 나와 있다. 분명히 내가 예술가임은 누가 뭐래도 내 피가 확인을 해 주건만 전위 예술을 접할 때마다 나는 남 몰래 난감하다. 내가 대단히 좁은 시야를 가졌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찌질한 화가인지도 모른다.
아님 벌거벗은 임금의 새옷을 입에 침에 마르게 칭찬하는 겁먹은 군중 중의 한 사람인건지.. 한국에 우리 문화 유산에 대한 질풍노도같은 유행을 일으킨 유흥준 미술 비평가가 얼마전 한 강의에서 자신이 은퇴한 이유를 말한걸 들었다. 그 자신이 이해하는 미술은 화폭 위에 선과 색갈과 물감으로 표현된 거 였는데 갑자기 아방가르드가 나오고 다다, 행위 예술, 설치 예술, 비디오 예술이 나오고 보니 자신이 거짓말로 시늉을 하기전에야 할 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일단 은퇴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도 나처럼 눈 똥그랗게 뜨고 이 세계가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풀려갈른지 무슨 단서를 잡을 길이 있을까,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박식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나도 모르겠다.’ 고 한 말이 얼마나 내게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백남준이나 죠셉 부이, 오노 요꼬나 죤 케이지를 모른다고 하면 남들이 무식하다 할까봐 겁은 나고 암만 들여다 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아는체 떠들 주제는 못되고, 나, 화가 맞아?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좋아하고 감탄하며 질리지 않고 좋아하는 그림은 만오천년 전에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다. 지금 이 시절 우리는 잘 버무려져 튜브에 곱게 담겨있는 오색 물감을 손에 쥐고도 맘에 드는 색을 섞어 내기 쉽 지 않다. 그런데 그 시절의 동굴인들은 유인원 수준으로 짐승의 가죽을 두르고 말 대신 꿍꿍거리는 기성으로 의견을 나누고 돌로 돌을 찧어 도구를 만들 시기였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색이며 선과 형태를 그렸을까. 그리고 그 색들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추출해 냈기에 아직까지도 고대로 보존될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화가들이 미술 대학에서 몇 년씩 교육을 받고 졸업후엔 혼자 몸부림치며 수십년을 끌탕해도 그만한 그림은 그려내지 못한다. 학교에 다닐 땐 못생겼거나 가난하거나 상관없이 그림을 기차게 잘그리는 남학생이 인기가 있었다. 그럼 만오천년 전의 동굴인, 냄새는 나고 이마는 툭 튀어나왔고 동물같은 이빨을 들어내고 고릴라처럼 킁킁거리는 케이브맨이 21 세기인들이 보기에도 혀를 내두를 만한 화가라면, 반할수 있을까? 재능은 좋되 체면 역시 중요한게 인간의 얇팍한 심사니 대답할 수 있는 가정이 아니다.
인간이 진화되고 세련되어지고 지식과 학문이 깊어져도 정작 지구가 둥글다는 게 증명된건 기껏 몇 백년 전의 일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질병과 가난과 무지와 편견속에서 참 비참한 삶을 살았다. 권력을 쥔 일부를 빼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많은 이들이 비참한 삶을 살았다.
물론 중간 중간 미스테리하게도 현대에 못지 않게 발전된 문명을 자랑하던 시대가 이곳 저곳에 잠시잠깐 있긴 했다. 최근 ‘안젤라의 재’ 라는 아일랜드 사람의 자전적 소설을 읽었는데 그들의 가난은 너무도 암담했다. 또 우리 나라 불가촉 천민의 암울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인가.
영국 소설을 봐도 프랑스 소설을 봐도 인도나 남미의 소설을 봐도 가난과 무지가 가져다 주는 삶의 비참함은 무섭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아주 먼 옛날이 아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는 너무나 비참한 상황이 곳곳에 있다.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정보의 힘도, 물질의 풍요함도, 예술의 발전도 인간이 겪고 있는 갖은 모습의 불행은 막을 수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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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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