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비우스는 그리스 출신 역사가이다. 그리스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결성된 아케아 동맹의 기마 대장을 아버지로 둔 덕에 어려서부터 정치와 군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아케아 동맹은 로마의 의심을 받아 기원 전 167년 그리스 귀족 1,000명을 인질로 보내라는 로마의 요구를 받고 폴리비우스는 그 일원으로 33살의 나이에 로마로 끌려가게 된다. 그는 그의 학식에 반한 로마 귀족 눈에 띄어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승자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손자 스키피오 에밀리아누스의 가정교사로 발탁 된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한 때 세계 최강의 제국 페르시아를 꺾은 그리스는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로마는 지중해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데 대해 관심을 갖고 그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그의 ‘로마사’다.
그는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물리칠 때 작은 촌락에 불과하던 로마가 불과 300년 만에 지중해의 최강자가 된 것은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고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며 신을 두려워하는 로마인들의 국민성과 침착하고 덕이 있는 지도자들 덕분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그가 볼 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의 정치 체제였다. 그는 정치 체제를 왕정과 귀족정, 민주정 셋으로 나눴다. 그에 따르면 왕정은 반드시 독재 정치로 추락한 뒤 귀족 정치로 이동한다. 귀족 정치는 과두 정치로 변질된 뒤 민주 정부가 들어서지만 이는 중우 정치로 추락한다. 중우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며 그 결과 다시 왕정이 탄생한다.
다른 나라들은 이런 혼란의 사이클을 반복하지만 로마는 1인 통치를 대변하는 집정관, 소수 이익을 대변하는 원로원, 다수 이익을 대변하는 민회가 함께 공존하며 서로를 견제해 사회 혼란을 막고 안정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 안정된 정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훗날 삼권 분립을 주장한 몽테스키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1776년 미국을 창건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로마의 역사에도, 계몽 철학에도 밝았다. 이들이 연방 헌법을 마련하며 가장 고심한 부분의 하나가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지도자를 뽑을 것이며 일단 지도자를 선출한 다음에는 이를 견제하고 감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 결과 나온 것이 1인과 소수, 다수의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로마식 혼합 정부와 몽테스키외 식의 삼권 분립이었다. 미국 정부 구조가 대통령과 상원, 하원으로, 또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눠진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이 오늘 날 같은 정부 구조를 갖게 된 것은 폴리비우스와 몽테스키외의 공이 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부구조를 갖고 있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유권자와 정치 지도자가 변변치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장치도 무용지물이다. 빈 깡통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어 놓은 대중 선동가 방화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폴리비우스 말대로 중우는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을 ‘강력한 지도자’로 잘못 보고 있다.
그 대항마로 나온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거짓말의 질과 양에서 단 한 사람 도널드를 제외하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20년이 넘게 정치 활동을 한 힐러리를 미 국민 2/3가 신뢰하지 않고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도 않았지만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 네로와 칼리굴라 같은 폭군이 등장한 뒤에도 400년을 버텼다. 그러나 친 자식이 아니라 가장 유능한 인물로 양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던 5현제 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못난 친 자식 코모두스에게 보위를 넘기면서 로마는 과거의 영화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워싱턴이 세우고 링컨이 키운 미국도 하루아침에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 국민들이 오는 11월, 협잡을 일삼는 빈 깡통 도널드를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몰락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봐도 된다. 도널드를 지도자로 택한 국민은 누구라도 대통령 자리에 앉힐 수 있다. 더 늦기 전 미 국민들이 망상에서 깨어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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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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