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난 귀찮아서 안 해. 어차피 내 한 표 빠져봐야 결과에 무슨 영향이 있겠어…” 라는 절친한 지인의 말. “투표 하는 게 그렇게 귀찮으면 그냥 공산주의 국가에 가서 살던지…” 라고 한소리 하려다가, 투표권을 포기할 권리 역시 본인의 자유인데, 왜 내가 굳이 나서서 설득을 해야 하는가 싶어 그냥 채팅창을 닫았다. 평소에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의 그가 투표에 한에서는 그렇게나 무의미함을 느끼다니 다소 놀라웠고 씁쓸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다시 그에게 연락을 하여 투표에 동참하기를 부탁했다.
민주주의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민중 지배”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권력을 실현하며, 대통령이라는 국가의 원수 역시 국민의 여론을 통해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위임 받는다는 개념이다. 불과 몇 명의 면접관을 거치는 일반 취업의 관례와 달리, 정치인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불철주야 유세를 펼치며 일종의 대규모 면접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투표율이 매우 저조한 편이다. 정치인들은 감시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정작 고용주로 팔 걷고 나서야 할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는데 있어 서로 책임감을 분산시키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엔 진짜 뽑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그냥 투표 안하려고…” 며칠 전 또 다른 지인의 푸념.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선거가 생각났다. 매년 꼭 마음에 드는 친구가 출마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좋으나 싫으나 꼭 투표를 하는 것이 학급원의 의무라 믿었다. 둘 다 싫으면 덜 싫어하는 친구에게라도 투표를 했고, 굳이 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한 표가 그저 누가 ‘전체 차렷, 열중쉬어!’를 외치는 임무를 맡을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앞으로 4년간 국가의 세금제도, 교육제도, 헌법에 포괄되어 있는 개인의 권리보호 및 외교와 국방까지 방대하게 영향을 미칠 권력을 위임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대선. 반장선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비중의 결정사항인 만큼 우리는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올바른 위정자를 선택하는데 일역을 담당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선은 단순히 양당 후보의 승패만을 결정짓는 게 아니다. 정권과 여론은 바람과 갈대 같은 관계이다. 높은 투표율로 선출된 대통령은 국정수행에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낮은 투표율과 근소한 투표차로 당선되는 대통령의 공약은 추진력을 갖기 힘들다. 가령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운 후보가 높은 투표율과 저소득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통해 당선된다면 그의 공약은 실현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일부 상위 계층의 금권과 영향력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적극적인 투표참여 의식이 끌고 가는 나라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인1표의 투표권이란 온 국민이 평등하게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한이며 민주주의 시민만의 특권이다. 어떤 이에게는 선거참여가 귀찮은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투표권이란 꿈에서 조차 갖지 못하는 소중한 권리일 수 있다. 물론 한사람의 투표가 즉각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명 한명의 투표가 모여 민심결집이 되는 것 아닌가.
정치인들이 관심 갖는 것은 오직 투표에서 나타나는 데이터뿐이다. 투표지 한 장이 갖는 의미에는 신분격차가 없다. 억만장자와 저명인사의 한 표와 가난한 사람의 한 표는 똑같다. 이런 온전한 권리를 빠짐없이 행사하는 것은 한 시민으로서 지금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주장을 개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몇몇 사람들만의 단거리 달리기 시합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힘과 중지를 모아 함께 뛰어야 하는 긴 레이스라고 할 수 있다. ‘흥, 니들끼리 뭘 하던지 관심 없다’는 식으로 무관심과 냉소를 보내는 것은 올바른 시민의식이 아니다.
항상 최선을 위해서만 선택하며 살 수는 없듯이, 때로는 최악의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수 없듯이, 항상 올바른 투표만 할 수도 없다. 아무리 심사숙고해도 미래는 예측하지 힘들다. 어쩌면 그래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다수결로서, 투표라는 공정하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큰 선택을 함께 하는 것 아닐까? 정치는 정치인들과 국민들 사이의 반응에 의해 이뤄진다. 반응하자.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서. ‘어두움을 탓하기 전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이 낫다’는 명언이 있듯이, 당신이 원하는 역사의 변화는 당신의 한 표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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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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