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의 산중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한 번에 1~2m씩 쌓이는 곳. 볕도 짧고 들도 좁다.
내다 팔 것이 변변치 않아 큰 돈을 모으기도 어렵다.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며 오순도순 사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주민들에겐 힘 겨운 터전이었겠지만 산을 비집고 찾아간 외지인들의 눈에 그곳은 동화 속 꿈의 세상 같았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기후현의 시라카와고 이야기다. 뾰족한 초가 지붕을 이고 있는 집들이 한데 모여있는 마을이다.
합장하는 손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일본의 산촌 전통가옥을 ‘갓쇼즈쿠리’라 한다. 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지붕을 최대한 뾰족하게 올려 세운 것.
알프스 산악의 오두막집 ‘샬레’와 지붕의 선이 닮았다. 이 갓쇼즈쿠리 가시라카와고엔 일본에서 가장 많은 110여 채가 모여있다. 2,000~3,000m급 산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맑은 강물 위로 난현수교를 건너면 마을을 만난다. 마을에 들어서자 갑자기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뛴 듯하고, 동화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 마을의 갓쇼즈쿠리는 여러 층의 다락방 구조를 지닌 제법 큰 규모의 초가다. 짚으로 엮은 지붕의 두께가 두툼하다. 마을의 집집 사이엔 논이 펼쳐졌다. 조경을 위해 가꾼 논 같았다. 벼가 무성하게 자란 논이 잔디깔린 정원의 역할을 하는 듯했다. 또 집집마다 옆에는 초가의 화재 예방을 위해 방수총(소방호스)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소방호스의 물줄기는 바로 집을 향하지 않고 지붕 위로 물커튼을 만들도록 돼있다고. 집을 덜 훼손시키며 불을 끌 수 있게 고안된 것.
일년에 몇 번 대대적인 소방훈련이 있는 날, 마을의 모든 방수총이 지붕 위로 물을 뿜는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
마을을 돌다 일반인들에게 내부가 공개되는 간다케라는 집엘 들렀다.
에도시대에 지어져 200년이 훌쩍 넘은 집이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마루 한복판에선 화로(이로리)의 숯이 이글거린다. 집 주인은 가옥을 오래 보전하기 위해 사시사철 불을 피운다고 설명했다.
이 연기가 나무가 썩지 않게 방부제 역할을 하고 또 벌레도 쫓는다고.
굴뚝이 따로 없어 연기는 천장을 뚫고 여러 층의 다락을 지나 지붕의 틈새로 빠져나간다.
위층 다락은 예전 누에고치를 길러 양잠을 하던 곳이다. 집주인은 그냥 ‘누에’ (가이코)라 하지 않고 꼬박꼬박 ‘누엣님’ (오카이코사마)이라 극존칭을 써가며 당시를 설명했다.
당시 주민들의 주된 수입이 양잠이었단다. 누에를 쳐서 명주실을 뽑아놓으면 멀리서 사러 왔다고. 이걸 팔아 돈을 마련하거나 딸 시집 보낼 때옷을 해줬다고.
집안 살림에 있어 가장 중요했기에 누엣님으로 극진히 모셨던 것. 하지만 이 동네는 여름이 짧아 1년에 2번 밖에는 수확을 거둘 수 없었다. 인근의 다른 지역의 경우 5번도 가능했단다. 결국 이 마을의 양잠은 1947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위층 다락에 올라갔더니 양잠을 하던 공간이 옛 농기구와 살림도구를 늘어 놓은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집주인은 지붕의 뼈대와 벽이 만나는 곳을 가리켰다. 못으로 박거나 쐐기처럼 이어 붙인 게 아니다. 지붕이 뼈대를 기둥 위에 살짝 올려놓고 질긴 나무껍질로 꽁꽁 묶은 구조였다.
300년 전 고안된 이 방식은 충격을 완화하는 내진설계로 도쿄타워에서도 배워간 기술이란다. 태풍과 지진같은 강한 충격에서 가옥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다. 정삼각형 모양의 지붕구조도 내진에 강하다고.
마을 가옥들은 크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집의 방향은 거의 같다. 눈을 빨리 녹일 수 있고, 집안에 바람을 쉬 불어넣을 수 있도록 최적의 방향을 찾아 모두가 공유한 것이다. 집의 기둥이 되는 목재는 인근 산에서 자란 삼나무들이다. 겨울이 길고 추워다른 곳보다 나무 생장이 느려 재질이 더 단단하다고 한다. 저 두툼한 지붕을 새로 올리는 날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돕는다고 한다. 마을이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주민들간의 끈끈한 유대다.
내 일 남 일 가리지 않고 서로 돕고 살았던 것. 만일 모두가 나서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그는 “소문은 빛보다 빠르다”며 미소 지었다.
주민들은 언제고 꼭 하룻밤을 묵어 가라고 했다. 동화 속 마을에서 한밤의 정적을 느껴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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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고=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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