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로 따지면 올해는 4349년이 된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 첫 고대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진 지 4,349년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고조선 설립연도는 역사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깝다고 믿고 있다.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증거나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고조선이 망한 기원전 108년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조선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 전 7세기다. ‘관자’에는 조선이 제나라와 교역했다는 기록이 있고 기원 전 4세기 중반 ‘전국책’에는 조선이 연나라 동쪽의 유력한 세력으로 나오며 4세기 말에는 조선이 연나라의 공격으로 받아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 전 195년 연나라의 위만이 무리 1,000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온 뒤 준왕을 몰아내고 위만 조선을 세우지만 불과 90년 뒤인 기원 전 108년 한나라의 공격을 받고 위만 조선은 멸망하고 만다. 그 후 2,000여년 동안 중국은 한 번도 한반도에 대한 애착을 버린 적이 없다.
한나라가 망하고 중국이 남북 여러 나라가 쪼개진 300년 동안은 잠잠했지만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마자 그 창끝을 한반도로 겨눴다.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연패하는 바람에 수나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 뒤를 이은 당나라도 한반도 침략의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결국 나당 연합군은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 66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을 격파함으로써 백제까지 멸망시킨다. 이 때 당나라가 수만의 군사를 동원해 신라를 도운 것은 신라가 예뻐서가 아니라 한반도를 자신이 장악하거나 최소한 한반도에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은 세력을 심어놓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당이 망한 후 군사적으로 허약한 송은 고려를 어쩌지 못했으나 만주에서 일어난 요와 금은 고려를 계속 압박했고 그 뒤를 이은 몽골은 13세기 40년 동안 9차례나 한반도를 쳐들어 왔다.
1592년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자 명이 원군을 보낸 것은 조선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반도가 일본 손에 들어갈 경우 만주, 나아가서는 본토가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이 만주와 본토로 넘어오기 전 한반도에서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1894년 동학 세력이 들고 일어나자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고 이에 맞서 청나라가 군대를 보낸 것이나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올라가자 중공군을 대거 남파한 것 모두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중국에 비우호적인 세력이 들어서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긴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아무리 핵실험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게 굴어도 중국은 결코 북한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망해 중국에 비우호적인 세력이 압록강까지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박근혜는 시진핑과 수시로 만나며 우애를 다졌다. 작년 중국 전승절 행사에는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퍼레이드까지 참석했다.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북한에 압력을 가해보자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실망뿐이었다. 올 초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을 때 박근혜는 시진핑과 통화라도 한 번 해보려고 매달렸으나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밤 12시에나 통화가 가능하다는 대답뿐이었다. 박근혜가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드 배치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것도 이 때 분노에 가까운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 북한이 5차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국내외가 시끄럽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북한과 중국이 보여준 행동은 매우 일관적이다. 북한은 누가 뭐래도 뚜벅뚜벅 핵개발을 추진해왔고 중국은 하품 나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며 이를 방관해왔다.
문제는 한국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단기적으로는 사드 배치 등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고 미국 핵우산 아래 꼭꼭 숨어야겠지만 여당 지도부에서 독자적인 핵 개발이 의제로 떠오른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북한이 장차 워싱턴과 뉴욕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하게 됐을 때 과연 미국이 자신을 희생해 가며 한국을 지켜주겠느냐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한반도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더 위중하게 흘러간다고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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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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