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부산 기장군 정관읍 곰내터널 안에서 유치원 버스가 터널 벽을 들이받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20초가 지났을까, 넘어진 버스로 30~40대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몰려들었다. 뒤따르던 차에서 내려 달려온 것이다. 이들은 출입문이 바닥에 깔리는 바람에 차안에 갇혀 겁에 질려 우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차안에서 망치, 골프채를 들고 와 조심스레 유리창을 깼다.
컴컴한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차량에 의한 2차 사고 우려가 있었지만 11명의 부산 아저씨들은 개의치 않았다. 유치원생 21명과 교사, 운전사들을 차례로 구조한 뒤 다친 아이가 없는 지 확인 하고 우는 아이들을 달래어 안심시킨 후 이들은 자리를 떠났다. 119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사고 후 5분 안에 모든 것을 수습한 이 상황이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방송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이 뉴스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사고가 나자마자 아무것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오로지 생명을 구하고자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 아직 한국이 살만한 나라구나, 희망이 있네. ” 하는 일종의 안도감이었다고나 할까. 또한 7일에는 20대 후반 임신부가 갑작스러운 산통으로 지하철 여자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아 역 직원과 시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충북 음성 꽃동네가 9월 8일로 설립 40주년을 맞았다. 1976년 당시 음성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한 오응진 신부가 자신이 동냥한 밥으로 18명의 걸인을 먹여 살리는 최귀동 할아버지를 보았다. 일제하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병들어 음성으로 돌아온 최씨는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걸인들과 지내면서 가장 역할을 했던 것. 이에 오신부가 음성, 가평에 ‘사랑의 집’을 세웠고 현재 노숙인과 장애인 등 4,000여명이 생활하면서 연간 30만명이 자원봉사 하고 있다.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곳에서 굶주린 사람들은 배를 채웠고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은 이슬을 피해 잠을 잤다.
미국에 살면서 그동안 들어온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실업 청년들이 자조적으로 표현한 ‘ 지옥(Hell, 헬) 조선’ 이었다.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최근의 ‘스폰서 부장검사’ 사태까지 정부와 검찰, 법원을 향한 국민의 신뢰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또한 신동빈-신동주 형제의 경영권 분쟁과 더불어 신격호 총괄회장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 모녀의 수천 억원 탈세의혹과 편법 증여 등등 롯데가의 비리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서민들이야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건 말건 내년 대권에만 눈먼 잠재적 대선 주자들의 행보는 한국에는 특권층만 득세하고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존재감은 없었다. 마치 갑의 세상과 을의 세상이 줄로 날카롭게 그어진 것처럼 남남으로 유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국의 지도층에서는 시민들의 눈물을 보아주는 이도, 닦아주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시민들이 스스로 살만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달려와 어린이들의 안전을 챙긴 부산 아저씨들, 갓난아기와 산모를 보호한 지하철 승객, 충북 음성 꽃동네 자원봉사자들, 이들은 배고프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기가 배고파 보았고 억울한 약자의 설움을 겪어보았기에 가난한 자의 눈물을 기꺼이 닦아준다. 자신도 넉넉지 않지만 자신의 먹을 것을 줄여서 나눠 먹고 따스한 마음을 나눠줄 줄 안다.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권력과 금력의 향방을 따라 죽기 살기로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면서 권력, 돈, 백그라운드 없이도 의연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뉴욕 한인사회에도 이런 이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한인 홈리스들이 먹고 자는 사랑의 집을 운영하는 이, 노인들이 취미활동과 여가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무료제공 하는 이, 한인 재소자들을 정기 방문하여 상담하고 기도해주는 이, 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작은 친절과 배려의 세상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어떤가, 소리 소문 없이 이들의 발걸음을 뒤따라가 볼 생각이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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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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