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하면, 어린 시절 온돌방에 누워서 천장에 도배된 벽지를 바라보던 때가 떠오르곤한다. 눈은 가끔 착시(?) 현상을 주어서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다양한 꽃모양의 무지개… 그 파노라마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듯 어른 거리곤 하였다. 미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때였지만 그 때 아마 삶이라고하는 아라베스크… 그 추상적이면서도 오묘한, 신비의 세계를 상상의 나래를 펼쳐 여행하곤했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상상하는 그 무언가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몇 달 전 한국일보 (본국지)오피니언 면에 ‘고흐를 내리고 고갱을 걸자’라는 컬럼(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이 실린 적이 있었다. 무슨 뜻일까? 읽어보니, (한국사회처럼) 당장 배워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출세위주의 유교적 교육 환경 밑에서는 아이들에게 상상력이 깃들 여백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즉흥적인 감흥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고흐보다는 눈앞의 대상을 상상력을 통해 전혀 다르게 표현했던 고갱식 교육을 권장하자는 내용이었다.
미국에 오면 누구나 실감할 수 있겠지만, 우리들은 정말 안타깝게도, 상상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같은 이민자들에게는 ‘길을 묻는 그대에게…’ 친절한 안내책자나 학원, 과외공부 선생같은 것도 없다. 과거는 몽땅,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나할까. 이름하여 이방인의 도전이 시작되는 것인데, (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문화, 생활 패턴은 더 더욱 다른) 이 거대한 공룡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무기란 거의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식물인간처럼 숨이나 쉬고, 아니면 재롱이나부리는 애완 동물처럼… 다음 세상에는 주류 사회에서 태어나 사람처럼 살아야지… 하는 침묵의 미덕(?)이 전부라고나할까. 외국생활의 엑사이팅은커녕, 바닷바람과 안개… 파도소리뿐인 이곳이야말로 사람을 살아있는 미라로 만드는 무서운 악령이도 했다.
새로운 삶은 사람을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삶의 패턴을 다소 다르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고독이 남긴 상처는 깊었지만, 인간은 또 가장 고독할 때,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절대 아름다움을 사색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사실 인간이란 고통(의 두려움)보다는 희망이라는 그 절대가치(의 아름다움)를 배신하고는 살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 해제 되어버린 영혼을 뚫고 아라베스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드뷔쉬의 피아노곡 ‘아라베스크’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비오는 날 거리를 방황하면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고적함, 낙엽이 스치는 쓸쓸함, 고독하면서도 또 그 고독이 주었던 아름다움의 여운이여! 억메어 있을 때 보다는 형체가 분해됐을 때 인간은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상주의라는 것이 별거 아니었다. 그것은 잉여인간… 다소 쓸모 없게 되었을 때, 눈 앞에 어른 거리는 찰라의 행복… 빗속의 아라베스크… 외로움이 마시는 방랑자의 독주이기도 했다. 다 쓰러저가는 고물 창고 같은 가게에서 다 헤진 옛날 판(LD) ‘라보엠’을 사들고 추적추적 비를 맞고 거닐 때 어디선가 들려오던 아라베스크는 영혼의 외로움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빛나는 보석이기도 했다.
아라베스크는 아랍(이슬람 문화권)에서 발달된 식물 덩굴처럼 얽힌 연속된 문양으로, 주로 벽 장식으로 쓰여왔는데 드뷔쉬, 슈만 등이 남긴 피아노 곡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드뷔시는 인상주의 작곡가답게 그 속에서 어떤 영혼의 해탈이라고나할까, 동양적인 신비… 눈부시면서도 외롭게 떠도는 방랑의 모호함, 또 모호하기 때문에 이방인의 외로움을 감싸주는 듯 아늑함이 감도는 아름다운 곡을 남겨 사랑받았다. 모두 2곡을 썼는데 드뷔쉬가 쓴 최초의 피아노 곡으로, 이전에 볼 수 없는 신선함과 개성 때문에 널리 연주되고 있다. 특히 1번은 이국적인 향수가 가득한, 명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이다.
얼마전 NASA에서 외계에서 보내온 신호같은 것이 수신됐다고하는데 저 멀리 외계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아라베스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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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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