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1세들은 대부분 ‘바이링구얼’(bilingual, 이중언어 구사자)이다. 양식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에게 메뉴를 주문할 때 “Me, too”라고 유창하게 말한다. 그런 점에서 한인들은 본국인들보다 취업과 연애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많고 치매에 걸릴 위험성은 더 적을 수 있다. 외국어강습 전문 앱인 바벨(Babbel)이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바벨이 미국과 영국에서 3,000명씩 추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 71%와 영국인 응답자 61%가 언어를 한개 이상 말하는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양국에서 똑같이 응답자 10명중 9명이 사랑을 위해서라면 새로운 언어를 배울 용의가 있다고 했고, 두명 중 한명은 외국어를 말하는 사람과 로맨스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고백했다.
바이링구얼이 아니어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응답자가 4명중 1명 꼴(미국인 26%, 영국인 23%)이었고, 취직 이력서에 언어능력을 과장했다고 털어놓은 응답자도 8명중 1명꼴(미국인 12%, 영국인 13%)이었다. 이와 함께 바벨은 바이링구얼로 성장한 사람들은 인식능력이 높아지고, 뇌졸중에서 쉽게 회복되며 치매를 일으킬 시기가 늦춰진다고 밝혔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최소한 2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공식 언어가 2개 이상인 나라도 많다. 싱가포르는 4개, 남아공은 무려 11개다. 모국어 외에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인도어, 아랍어 등 소위 ‘수퍼 언어’를 한개 이상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이 보편화돼가고 있다. 영어만 말하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은 머지않아 언어 소수계로 전락한다.
헐리웃 톱스타들인 샌드라 불럭, 레오나도 디카프리오, 아놀드 슈와제네거(전 캘리포니아 주 지사)는 영어-독일어, 조디 포스터와 자니 뎁은 영어-불어의 바이링구얼이다.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영어-이탈리아어를 한다. 오드리 헵번은 5개 언어(영어-화란어-스페인어-불어-이탈리아어)를 했고, 한인스타 샌드라 오는 4개 언어(영어-한국어-불어-스페인어)에 능통하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다 언어 구사자는 리베리아 태생인 지아드 파자이다. 그는 1991년 한 TV쇼에서 한국어를 포함한 59개 말로 소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때 사전준비 없이 말할 수 있었던 언어는 15개였다고 그가 지난해 실토했다. 모차르트도 15개 언어를 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소통능력은 없지만 3~4개 외국어가 유창한 걸로 알려졌다.
바이링구얼의 이점은 위의 바벨 설문조사가 밝힌 것 외에도 많다. 우선 비즈니스와 해외여행에 유리하다. 지식과 인간관계 폭은 물론 취업기회도 넓어진다. 인터넷 구인란을 탐색하면 바이링구얼 채용광고가 홍수를 이룬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관위에 바이링구얼 직원을 채용하는 주들도 있다. 한국 직장에 취업하는 바이링구얼 한인 2세들도 늘어난다.
자녀를 바이링구얼로 만드는 건 너무나 쉽다. 갓난이 때부터 부모(또는 조부모)가 항상 한국말로 대해주면 된다. 부모 한쪽이 영어, 다른 쪽이 한국말을 해주면 더 좋다. 아이가 혼란을 일으켜 오히려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건 근거 없는 논거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위의 헐리웃 스타들도 모두 어려서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바이링구얼이 됐다.
한국의 바이링구얼 영어교육은 전쟁수준이다. 부모들이 너나없이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 미국에 조기유학 오는 아이들도 많다. 미국에선 전국 2위 규모인 LA 통합교육구와 타코마 교육구처럼 한국어를 정식 이중언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채택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이링구얼은 지구촌시대 답게 사람들의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자리를 굳혔다.
내 아들도 바이링구얼이다. 아들보다 더 완벽한 바이링구얼인 며느리는 매일 한국말로 전화하고 카톡도 보내온다. 우리부부의 큰 자랑거리다. 그런데 손녀손자 얘기가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애들이 할머니에게서 배운 한국말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아들부부처럼 바이링구얼의 귀한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 젊은 한인부모들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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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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