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다. 멍멍이가 부산스레 짖기에 밖을 내다보니 아들놈이 지 마누라와 아들 먹일 맥도날드 아침을 사들고 제집으로 들어간다. 맞붙어 사는 아들네는 일요일 아침마다 지들이 이루어가는 가정의 전통이라나, 식당으로 브런치를 사먹으러 나가는데 오늘은 그냥 집에서 드시기로 작정했나 보다.
내가 애들 키울 때 우리 앞집엔 나보다 약간 어린 중국인 부부가 아들 둘 데리고 살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남자가 밥 한다고 하더니만 일요일 아침엔 늘 남자가 나가 맥도날드 아침을 사들고 들어 왔다. 창문으로 내다보며 정말 부럽다, 저렇게 남편 부리는게 쉬우면 사는 것도 엄청 쉽겠다, 아침을 차려내며 내 팔자를 한탄했다.
다이야반지도 벤츠도 로스알토스 힐의 집도 그 아침만큼 부럽지는 않았다. 물론 그 중국여자도, 내 며느리도 나보다 훨씬 이쁘니까 이쁜 여자는 운명적으로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일게다만은, 쩝! 내가 그토록 목이 메게 부러웠던 일을 내가 가르키고 키운 아들이 제 아내에게 실천해주는 걸 보며 내가 얼마나 아들교육을 잘 시켰나, 삶의 열매로 뿌듯한 보람까지 느끼며 흐믓해야 하거늘, 이건 뭐지? 까실 까실, 아니꼬우려 한다. 아무튼 부엌에서 창문으로 그들을 부러워 하며 넘겨보는 내 모습은 처량하다. 노래 제목에도 있지만 폼나게 사는 건 모두가 원한다. 누군들 폼나고 싶지 않은 이가 있으려나. 그런데 비극은 폼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세상사 모든 게 그렇듯이 그게 뭐든 이루려면 갖은 수단과 목숨을 걸고 추구해야 하는데 남들에게 폼난다는 게 대개는 물질을 통해 증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로 돈이라면 온갖 수모도 버리고 달려들지만 그렇다고 돈이 수중에 들어오느냐 하는 건 또 다른 스토리다. 일생 그 목적 하나로 뛰고나서 결국 뜻 대로 되지는 않아 빈손을 내려다 보게 되면 그때 느끼는 허무함을 얼마나 클 것인가. 비지니스 머리는 백치인 내가 그나마 위로되는 건 내가 돈 버는 능력이 없다는걸 일찌감치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돈을 쫓느라 세월과 머리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꼼꼼한 덕에 잔소리는 들었지만 굶을 걱정은 없었다. 정녕 나는 대단한 복덩이 여편네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얼마전 사흘 연휴때다. 자동차 바퀴가 자꾸 바람이 빠졌다는 싸인이 들어온다. 몇 번 남편에게 애처로운 표정으로 사정을 하는데 이즈음 남편은 남편대로 제 갈길 준비하느라 내 고단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며칠 노는 사이에 타이어좀 봐주면 좋으련만 그는 오직 며칠 노는 사이에에 자신에게 중요한 일 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에이, 조국이 내게 뭘 해주길 바라지 말듯 남편이 내게 뭘 해주길 바라지 말자, 마음을 바꿔 먹고 타이어에 바람 넣으러 개스스테이숀으로 향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니 사람 약올리기로 작정한듯 out of order 라는 싸인이 늠름하게 붙어있다. 전능하신 천주성부... 중얼중얼 성질을 달래며 다른 곳으로 가니 에어 넣는 자리 바로 앞에 번쩍이는 벤츠가 자리잡고 있다.
그 자리가 나를 위해 reserve 된 곳은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웬지 억울하다. 슬쩍 넘겨다 보니 이즈음 이 동네에 넘쳐나는 까무잡잡한 아시아 인이다. 아들들이 엄마는 제법 배웠다는 사람이 챙피하게 인종차별자라고 비난 하는데도 나는 괜히 그 나라 사람들이 싫었던 참이어서 고갤 외로 돌리고 낑낑대며 호스를 끌어다 타이어에 공기를 넣으려 하는데 호스 구멍은 마치 내가 뽀뽀 좀 하자고 입술 내밀고 쫒아다니면 잽싸게 이리 저리 고갤 비키는 손자의 입처럼 요리조리 비켜가는 것 같다.
투덜투덜, 낑낑, 엉금엉금 헛손질을 하는데 벤츠로 내 자리를 점령한 그 인도 남자가 뒤에서 ‘May I help you?’ 한다. 그래, 나는 기다렸다, 냉큼 호스를 넘겨주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 거린다. 내 남편 남의 남편 따질 거 뭐 있나, 이 세상의 어느 남편이 이 세상의 어느 마누라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그걸로 된거지. ‘남편이 내게 뭘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남편에게... .’
<
최 정>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