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국무부 관리와 클린턴 재단 관계자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일부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사법 감시’(Judicial Watch) 라는 단체가 ‘정보 자유법’에 의해 얻어낸 이 자료에 따르면 클린턴 재단과 국무부는 예상대로 힐러리 국무장관 재임 기간 매우 화기애애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재단 고액헌금자가 국무부에 특별대우를 요청하면 재단 측은 이를 국무부에 전달하는 식이다. 이중에는 이뤄진 것도 있고 이뤄지지 않은 것도 있다. 클린턴 재단에 500~1,000만 달러를 헌금한 케이스 와서만이 범죄 경력이 있는 영국 선수의 비자 요청을 부탁했지만 이는 기각됐다. 반면 5만 달러 이상 기부한 바레인의 왕자 살만 빈 하마드 알-칼리파가 긴급 면담을 요청하자 이는 허락했다.
클린턴 측은 이처럼 그녀가 국무장관으로 내린 결정은 그 때 그 때 상황과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내려진 것이지 재단 헌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 재임 기간 그녀가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전화로 접촉한 사람 15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85명이 재단 헌금자로 밝혀졌다. 이들이 낸 총 헌금액은 1억5,600만 달러에 달한다. 1인당 평균 2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이다. 일반 개인이 이런 돈을 낼 리는 없고 낸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제3세계의 독재자/범죄자/장사꾼/기타 미 국무부와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이다.
이들이 갑자기 자선사업에 큰 관심이 생겨 클린턴 재단에 기부한 것은 아니라고 봐도 된다. 자선 사업은 자기 나라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굳이 미국에 하겠다 하더라도 그런 단체는 수를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클린턴 재단을 택한 것은 자선 단체라 정치헌금에 관한 제약을 받지 않고 마음껏 줄 수 있는데다 훗날 힐러리를 만나는데 우선권을 갖는 특혜를 부여받거나 최소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도록 보험을 들어두자는 의도였다고 봐야 한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취임 전부터 개인 서버를 만들어 두고, 국무부 규정을 어겨가면서 공식 이메일 대신 개인 이메일을 사용하고, 이것이 문제가 되자 3만통의 이메일을 삭제한 것은 재단과 국무부와의 관계가 공식 자료로 남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토록 노력한 것을 보면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이메일 공개로 자신이 국무장관 취임 시절 “재단과 국무부 사이 방화벽을 쌓겠다”던 오바마와의 약속은 허언임이 입증됐으며 가뜩이나 별로였던 힐러리의 신뢰도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부부는 2001년 백악관을 떠나 강연료 등으로 매년 1,000~2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왔다. 그 돈만도 차고 넘칠 텐 데 도대체 뭐가 모자라 국무부에서의 영향력을 팔아 제3세계의 더러운 돈까지 재단으로 긁어모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헌금액에 따라 접견 리스트를 짤 것인가.
집권하면 빌과 힐러리가 재단에서 손을 떼고 외국인이나 기관으로부터의 헌금은 받지 않겠다고 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재단을 폐쇄하고 지금까지의 영향력 판매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지옥이 얼기 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힐러리는 영부인과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쳐 이제 대통령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돈도 어느 정치인보다 많이 모았다. 아마도 스스로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힐러리보다 먼저 미 초대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초대 프랑스 대사, 버지니아 주지사, 부통령,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그런 것들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집권 기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 영토를 평화적으로 2배나 늘렸지만 그가 직접 쓴 묘비명에는 이런 사실도, 그가 봉사한 수많은 공직에 대한 언급도 한마디 없다. 단지 “미 독립선언서와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의 저자, 버지니아 대학 창립자 토머스 제퍼슨 여기 묻히다”라고만 돼 있다.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과 지금 정치를 한다고 나대는 미국인들의 정신적 격차가 너무나 깊고 크다.
힐러리도 더 늦기 전 인생에서 “뭣이 중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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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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