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자신의 강경 일변도 이민공약을 완화시킨다, 아니다…를 반복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말 바꾸기가 계속되면서 트럼프 캠프에 고민스런 과제가 던져졌다 : 완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 정답을 결정 못해 오늘 콜로라도 유세에서 행할 예정이었던 이민정책 연설도 이번 주 초 취소되었다.
트럼프에게 ‘이민’은 그저 하나의 이슈가 아니다. 자신을 2016년 대선의 수퍼스타로 띄워 올리며 공화당 대선후보로 등극시켜준 이슈다. 멕시칸 이민을 범죄자로 모욕하는 극언으로 조명을 받으며 출마를 선언한 이후 15개월 동안 일관되게 외쳐온 것이 반이민 구호였다. 중도적 입장을 취하던 경선의 라이벌들을 가차 없이 공격하며 선동적인 메시지로 보수표밭을 사로잡았다.
그의 이민 공약은 ‘대규모 추방’과 ‘국경장벽 쌓기’의 두 마디로 정리된다.
급증하는 이민에 대한 불안과 반감을 자극하며 공화당 극우표밭을 열광하게 한 이 공약들은 너무 비인도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경제적이어서 ‘정책’이라고 하기도 난감할 정도다. LA타임스가 오하이오 주민과 맞먹는 인구를 강제로 쫓아내겠다는 트럼프의 추방작전을 숫자로 풀어 보았다:
‘추방군’을 구성하여 1,100만 서류미비 이민자 전원을 추방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공약을 실현하려면 우선 4,000억~6,000억 달러의 경비가 든다. 이들을 태운 추방버스들은 1만 마일 이상의 행렬을 이룰 것이다. 이들 중 최소 800만 명이 미국에서 일하고 있어 이들이 사라지면 국내총생산(GDP)에서 1조 달러가 날아간다. 농업, 건설, 호텔업 등의 노동력 부족현상과 함께 450만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지게 된다…
장벽 쌓는 경비를 멕시코정부가 내도록하겠다는 허황된 장담과 이민들에 대한 악의적 비하를 무기 삼아 그는 공화경선의 진흙탕 싸움에서 45%의 득표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이민’ 공약은 다른 막말과 달리 그에겐 번복이 쉬운 이슈가 아니다. 너무나 강도 높게 너무나 명확하게 내세워온 핵심주제이기 때문이다.
8월 들어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트럼프는 지난주 선거캠프를 전격 개편하며 캠페인 재부팅에 나섰다. 이번에도 꺼내든 카드가 ‘이민’이다. “단호하지만 공정한”이라는 애매모호해 재해석이 필요한 해법을 내세웠다. 경선의 강경책에 본선에 들어선 ‘새로운’ 트럼프의 인도적 배려를 가미하려는 전략이다. 아직은 반이민 극우 표밭의 반응과 소수계 표밭의 효과를 탐색하는 간보기의 단계다. 완화시킨다, 아니다…의 말 바꾸기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말 바꾸기 소동의 전말은 이렇다 : 최근 새로 구성된 트럼프의 히스패닉 자문단들은 20일 그와 회합을 마친 후 트럼프가 추방입장을 완화시키려할 뿐 아니라 서류미비 이민자들에게 합법신분 허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고 이들을 인용한 유니비전과 버즈피드뉴스는 이민공약 ‘완화’ 조짐을 보도했다. 트럼프 진영은 즉각 이민 입장을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21일 아침, 새로운 캠페인 매니저는 CNN의 ‘추방군’에 대한 질문에 “앞으로 결정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22일 트럼프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불법이민은 “단호하고 강력하게 다루어야 한다”면서 완화설을 일축했다. 콜로라도 이민정책 연설 일정도 이날 취소됐다. 그리고 23일 텍사스의 타운홀 미팅에서 그는 “당연히 완화가 있을 수 있다…우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려는 게 아니다”라고 꼬리를 내렸으며 24일엔 플로리다 주 흑인과 히스패닉 표밭을 찾아가 구애작전을 폈다.
트럼프가 ‘트럼프답지 않게’ 이민표밭 아웃리치에 나선 것은 선거 판세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 발표된 NBC뉴스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힐러리 대 트럼프의 지지율은 50% 대 42%로 아직은 한 자리 숫자 차이다. 그러나 소수인종 표밭에선 그 차이가 엄청나다. 히스패닉은 73% 대 22%, 아시안은 66% 대 23%, 흑인은 무려 87% 대 8%로 힐러리에 밀리고 있다. 소수계를 무시하고 당선되려면 백인표 중 최소 64%는 얻어야 하는데 백인 지지율마저 50%에 그쳐 41%의 힐러리를 조금 앞 선 정도다.
그래서 트럼프의 말 바꾸기가 겨냥하는 대상은 소수표밭만이 아니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한다. 그의 인종정책을 혐오하며 이탈한 공화당 중도파 유권자들에게 되돌아올 명분을 주려는 치밀하게 계산된 작전이라는 시각이다.
어떤 목적이든 트럼프의 원색적인 반이민 구호가 대선 캠페인에서 사라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민표밭을 향한 득표 작전이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인종주의 본색을 드러낸 트럼피즘에 투표로 대항하려는 이민사회의 의지는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트럼프의 얄팍한 재포장 전략에 솔깃하기엔 그가 이민사회에 가한 상처는 너무 깊고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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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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