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영은 마치 이 비웃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 양, 수치심이 들었다. 숙자씨가 희영을 알아보기 전에 희영은 얼른 발걸음을 돌려 서둘러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조정희
183 고가다리 아래 숙자씨가 처음 나타난 것은 세 달 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짧아서 더 아름다운 텍사스의 봄빛 아래 숙자씨는 잔잔한 꽃무늬가 박힌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지갑과 손거울이 간신히 들어갈만한 작은 손가방을 들고 다리 밑 신호등에 서 있었다. 단촐한 차림이 마치 동네 산보라도 나선 듯한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183를 지나는 무수한 차량 안의 운전자들이 조금 주의깊게 보았다면 숙자씨가 동네 산책을 나온 세월 좋은 노인이 아니라는 것은 곧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숙자씨는 신호등이 보행 신호로 바뀌어도 길을 건너지 않았다. 신호등이 주행 신호로 바뀌고, 다시 보행 신호로 바뀌고, 노랑 불빛이 다시 빨강으로 바뀌는 것을 되풀이하는 동안 신호등 옆에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호등이 계속하여 바뀌는 동안, 신호등 옆에 붙박이장처럼 고정된 늙은 동양 여자에게 신경을 쓰는 운전자는 없었다. 희영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좌회전을 하면서 노인의 차림새가 궁색해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 퇴근 길에도 여전히 신호등 옆에 고정되어 있는 숙자씨를 언급한 건 마크였다.
“일요일 날 신호등 앞에 서 있던 할머니, 오늘도 그 자리에 있더라. 봤어?”누구 말하는 거야?“일요일에 조깅하고 돌아오는 길에 183 아래 있던 할머니, 기억 안나? 옷차림이 깔끔해서 홈리스는 아닌 것 같았는데, 오늘도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걸 보니 홈리스일 수도 있을 것 같아.”183 아래는 원래 홈리스들 많잖아. 갑자기 홈리스들이 걱정이라도 되는거야?”“동양인 홈리스는 워낙 드무니까. 혹시 알아? 한국 사람인지도?”“한국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 그리고 또 한국 사람이라도 해도 그게 자기랑 무슨 상관인데?”희영은 자기도 모르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렇게 말하면, 뭐 나랑은 상관없지. 그래도 너는 같은 한국 사람인데 좀 신경써야 되는 거 아냐?”“내가 왜? 내가 한국인 대표도 아닌데 모든 한국 사람들을 책임이라도 져야 된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할머니 한국 사람 아니라니까!”희영은 필요 이상으로 언성을 높인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그날 밤 내내 마크에게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다. 마크는 희영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양 손을 들어올렸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희영은 그날 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야 겠다고 둘러대고 혼자 차를 몰고 나왔다. 도서관에서 183 고속도로는 0.3 마일 정도의 거리이다. 불이 모두 꺼진 캄캄한 도서관의 야간 도서반납대에 책을 넣은 후, 희영은 잠시 망설였다.
‘뭐, 밤이니까…’희영은 숙자씨가 서 있던 신호등에서 최대한 먼 차선에서 운전하며 신호등 쪽을 살폈다. 183 주변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 번잡하던 거리는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환하게 켜진 가로등 덕분에 주위를 식별하기는 쉬웠다. 신호등 아래에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희영은 신호등 앞에서 좌회전을 한 후, 속도를 조금 늦추어 백미러로 신호등 주위를 다시 한번 스캔했다. 신호등 옆에도, 신호등 주위에도 숙자씨는 보이지 않았다. 희영은 그날 밤,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숙자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 동양 할머니, 이제 안보이네. 집에 돌아갔나봐. 홈리스 아니었던 것 같아.”희영은 나이트 스탠드에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마크에게 말했다.
“그래? 잘 됐네.”“그런데 돌아갈 집이 있다면 왜 일주일도 넘게 신호등 앞에 서 있었을까?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넌 진짜 걱정 안돼? 네 어머니랑도 많이 닮았던데 말이야”“됐어. 우리 엄마를 닮긴 뭘 닮아. 네 눈에는 어차피 동양 사람 다 똑같아 보이잖아. 잠이나 주무시지.”희영은 냉큼 램프의 불을 껐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마크가 낮은 한숨을 내쉬는 것이 들렸다.
숙자씨가 다시 신호등 앞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후였다.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자리나, 입고 있는 옷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자는 이제 꽃무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고, 챙은 이리 저리 구겨져서 우스꽝스러웠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머리는 오래동안 감지 않은 듯, 먼지로 뒤덮여 뭉쳐있었고, 갈색으로 그을은 얼굴에는 땟국물이 흘렀다. 무엇보다 희영의 가슴을 내려앉게 한 것은 오줌의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바지였다. 카키색의 면바지는 군데 군데 짙은 얼룩으로 뒤덮이고, 여기 저기 구멍도 나 있었다. 희영은 신호등 앞을 지나갈 때 최대한 속도를 낮추었다. 숙자씨의 바로 앞을 지나갈 때는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면 숙자씨의 오줌 섞인 체취와 함께 때가 까맣게 낀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희영은 숙자씨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숙자씨도 희영을 정면으로 바라봤지만, 숙자씨의 눈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확인이라도 하듯이 희영은 “저예요”하고 말을 건넸지만, 숙자씨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런 기색도 없다. 이 때 희영이 느낀 안도감과 죄책감의 크기 중 어느 것이 더 컸는지는 희영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희영이 숙자씨를 처음 만난 것은 일년 전, 한국 학생회 웹사이트를 통해서였다. 마크의 집으로 이사 들어가기로 결정한 후, 희영은 지역 한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이 사이트의 중고품 매매 섹션에 카우치며, 침대 등을 내놓았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희영에게 학생회 웹사이트는 다른 한국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마크를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마크는 의아하다는 듯 희영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은 다 교회에 다니거나,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던데, 너는 왜 교회도 안나가고, 다른 한국 친구도 없어?”“어떻게 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된거지, 무슨 뚜렷한 이유나 신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은 다른 한국 사람들과 같은 부류로 보이는게 싫어서 그렇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희영이 유학을 와서 처음 친해진 친구들은 같은 전공의 일본 학생들이었다. 친절하고 예의바른 그들과 친구가 되기는 쉬웠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질문을 하지도 않았고, 부담스러운 친절을 베풀거나, 과한 배려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희영은 이런 사람들이라면 내가 직접 겪지도 않은 먼 과거의 일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런 질문을 하고는 했다.
“라마에 있는 한국 식당에 갔는데, 거기 캐셔가 영어를 전혀 못하더라고. 게다가 카드 안받고 현금만 내라고 하는 통에 곤란했어. 일본 식당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데, 왜 한국 식당에서는 그런 일이 많지? 불법 체류자라서 세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야?““친구 부부가 5년 동안 불임이었는데, 결국에는 입양을 생각하나봐. 그런데 입양 웹사이트들을 돌아보니까 한국 애기들이 굉장히 많던데, 그건 왜 그런거야? 한국은 중국처럼 못 사는 나라가 아니잖아?”희영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질문이 정말 질문인지, 질문을 가장한 교묘한 비하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어떤 의도인지 알았을 수도 있지만, 희영은 모르는 척 했다. 10년 이상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미국인들에게 비쳐지는 일본인의 모습과 한국인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역력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영이 조교로 가르치던 학부 클래스의 어린 미국 학생들은 일본 문화에 열광했다. 한국인들이라면 도넛 샵이나 세탁소를 하기 위해 태어난 줄로만 아는 미국인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호감을 이해할 수 없어 희영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일본 친구들과 사귀는 것은 희영에게 편리했다. 미국인들의 이런 태도 덕분에 일본인 친구 무리에 섞여 있으면, 적어도 차별은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동안 한국인들과 불필요한 교류는 피해왔던 희영이 한국 학생회 웹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 연락을 한 것은 스스로도 의외였다. 게시물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제목: 통역과 운전 봉사를 해주실 분을 구합니다.
내용: 억울하게 이혼 소송 중인 한국 할머니를 도와주실 분을 급히 구합니다. 영어를 못하셔서 변호사 상담 시 통역과 변호사 사무실과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주시는 일을 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도와드려 왔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도와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요. 시간은 일이 해결될 때까지 일이주일에 한두시간 정도로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부담갖지 마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yukim@xxxx.com이혼 소송, 변호사라는 단어가 주는 스릴과 생경한 모험, 다른 사람의 가장 깊은 비밀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억울하게 이혼을 당할 처지라는 할머니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불우한 처지의 여성을 돕는다는 자부심…아마도 여러 가지 감정이 섞였을 것이다.
게시물을 올린 유진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숙자씨의 통역을 도와왔지만, 남편의 이직으로 타주로 이사가게 되어 더 이상 숙자씨를 도울 수 없다고 했다. 유진씨는 숙자씨의 딸들도 만나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딸들은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았지만, 숙자씨와는 거리를 두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숙자씨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자 딸들은 돈을 모아 조그만 방 하나를 구해준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유진씨는 숙자씨를 더 이상 돕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고 안타까웠는지, 희영에게 연신 숙자씨를 잘 부탁한다고, 가끔 시간 날 때 숙자씨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면 고맙겠노라고 했다. 유진씨는 상당히 마음이 약한 사람인 것 같다고 희영은 생각했다.
숙자씨를 처음 만난 것은 가정 폭력 피해자를 돕는 여성 단체에서 소개시켜준 변호사 사무실에서였다. 버스를 타고 변호사 사무실까지 왔다는 숙자씨는 한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변호사에게 연신 잘 이어지지 않는 한국어로 이것 저것 설명을 하고 있었다. 희영이 사무실로 들어서 자신을 소개하자 변호사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희영을 본 숙자씨의 까칠하게 주름진 얼굴이 마치 대형 반사판을 비추기라도 한 듯, 일순 환하게 빛나는 표정으로 바뀐 것이었다. 숙자씨는 부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한 표정으로 걸어와 희영의 두 손을 잡았다.
“아가씨,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렇게 신세를 져서 어쩔까.
고마워서 어쩔까나. 앞으로 잘 부탁해. 내가 여기서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말도 안되서.
이제부터 아가씨만 믿을께.”희영은 넘치는 환대와 기대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일 이주에 한번씩 한 두시간 정도 시간을 낼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다. 그렇지만 숙자씨의 눈에 가득 찬 감사와 희망 앞에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숙자씨의 케이스는 비록 비극적이기는 했지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평범한 케이스 같아 보였다 - 남편의 바람으로 인한 이혼. 뻔하다. 조금 특별한 점은 30년 간의 결혼 생활 후의 이혼이라는 점? 그것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30년 간의 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숙자씨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는 점? 이혼으로 인해 숙자씨는 65년의 삶 동안 이루었던, 비록 보잘것없지만,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상황? 그러나 숙자씨의 케이스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케이스의 당사자인 숙자씨였다. 예고없이 들이닥친 이혼 소송 앞에서 숙자씨는 극도로 흥분해있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혼 후 어떤 상황에 처하게될지 숙자씨가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30년 간의 미국 생활 동안 숙자씨가 습득한 영어는 문장이 아닌 간단한 단어의 나열이 전부였다. 게다가 한국인들과 전혀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살았던 듯, 숙자씨는 한국어 역시 상당히 잊어버린 듯 했다. 어떤 언어로도 하고 싶은 말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좌절감이 숙자씨를 막다른 곳에 몰아넣었다.
막다른 곳에 몰린 숙자씨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숙자씨는 변호사의 간단한 질문에도 급격히 흥분하여 장황한 탄식과 분노를 쏟아내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죠?”“글쎄 우리 남편이, 남편이란 작자가 하루 아침에 그러니까 하루 아침에 정신이 뒤집힌 거야. 그 뭐냐, 클라브 걸, 클라브 걸하고 시시덕거리며 다니더라고. 이 클라브 걸 년이 손톱을 이렇게 징그럽게 기르고, 가슴을 벌겋게 드러내고 둘이 그렇게 시시덕거리면서 다니더라고.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데! 조강지처가 멀쩡히 이렇게 살아있는데! 내가 그래서 남편한테 그년이 누구냐고 하니까, 친척이라고, 그 뭐시기, 사촌이라고 하대. 아니 사람을 뭘로 보고. 사촌이랑 벌건 대낮에 뽀뽀하고 돌아다니는 놈이 어디있냐고. 그렇지 않아요, 아가씨? 그러더니 지난 달에 년놈이 집으로 들어와서 나보고 나가라고 하대. 저런 천벌을 받을 년놈들. 둘이 배가 맞은 걸 내가 그동안 모르고. 내가 이렇게 무시당하고, 이렇게 억울해서 살 수가 없어…! 변호사 선생님한테 다 말해줘요, 이 놈이 이렇게 나쁜 놈이라고!”희영은 숙자씨가 말한 사실 모두를 변호사에게 통역해줘야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지난 달부터인 것 같아요.”“상당히 길게 말한 것 같은데, 그게 다예요?”숙자씨의 장황한 설명을 단 한 문장으로 통역하자 변호사는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숙자씨가 말한 모든 것을 변호사에게 그대로 전달하기에는 희영은 왠지 부끄러웠다.
변호사와의 세션은 그 후로도 이런 식이었다. 질문과는 관계없는 장황한 설명을 몇차례 되풀이 한 후에 간신히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 와중에 감정이 격해진 숙자씨가 통곡과 읍소, 절망과 분노를 오가는 동안 변호사와 희영은 어색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숙자씨는 남편이 얼마나 숙자씨의 김치 찌개와 불고기를 좋아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람이 난 후, 남편은 숙자 씨에게 음식 냄새가 난다며 불평했고, 집에서는 더 이상 한국 음식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숙자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된장 찌개며, 파김치를 만들다가 남편에게 맞기도 한 모양이었다. 숙자씨에게 필요한 것은 법률 자문이 아니라, 얘기를 들어줄 사람인 것 같다고 희영은 생각했다. 숙자씨의 주위에는 숙자씨의 고통과 불행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장성한 숙자씨의 딸들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숙자씨는 친구도 없었다.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끈질기게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에 결국은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통역 봉사자는 개별적인 질문이나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션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열 살이나 어린 외국 군인을 어떻게 믿고 미국까지 따라왔어요?’‘30년씩이나 사는 동안, 왜 영어는 안 배웠어요?’‘남편하고는 도대체 어떻게 소통한 거예요? 말도 안 통하는데, 그래도 사랑할 수 있었어요? 그게 진짜 사랑이예요?’그렇지만 희영은 이러한 질문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개별적인 질문외에도 통역 봉사자는 케이스 당사자와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여성 단체의 규칙이었지만, 전화 번호를 묻는 숙자씨에게 얼떨결에 전화 번호를 준 후로, 희영은 숙자씨와 자주 연락을 했다. 아니, 연락을 당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숙자씨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망설이는 태도로 희영에게 전화를 걸어왔지만, 곧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이삼일에 한번씩 전화를 걸었고, 희영을 만나고 싶어했다. 변호사 사무실 밖에서 만나는 숙자씨는 조금 달랐다. 마치 자기가 도움을 받아야하는 입장이라는 걸 잊어버린 듯이 살갑게 희영을 챙겼다. 희영이 주립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자 마치 자신의 딸이 이룬 성공인 듯 자랑스러워했고, “연구”하느라 바쁠 희영을 위해 이것 저것 음식을 만들어 날랐다. 숙자씨는 종종 희영의 집 앞까지 찾아와 희영에게 음식을 건네주곤 했다. 희영은 귀찮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음식을 종이 쇼핑백 한 가득 가지고 온 숙자씨를 집 안으로 초대하지는 않았다. 숙자씨는 아파트 입구에 서서 희영의 근황을 묻고, 주로 이번에는 몸의 어느 부분이 아픈지, 남편의 정부가 집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일 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희영이 노골적으로 피곤한 기색을 보인 후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했다. 희영은 이런 숙자씨가 시종 부담스럽고, 대부분은 창피하고, 가끔은 고마웠다. 숙자씨가 해다 준 불고기를 먹으며 희영은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어 조금 찜찜하지만, 그래도 숙자씨가 손맛은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희영과 숙자씨의 관계가 끝난 것은 숙자씨의 이혼 소송이 종료되어서도, 둘 사이에 문제가 발생해서도 아니었다. 이에 대해 희영은 지금까지도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희영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같은 생선을 구하러 가끔 동네의 중국 수퍼마켓에 가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와 오묘한 쩐내의 조합 때문에 자주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해산물이 많지 않은 텍사스 내륙 도시에서 신선한 생선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드물어 희영은 이곳을 종종 찾는 편이었다. 수산물 코너의 직원은 늙수그레한 중국 남자였는데 생선을 깔끔하게 손질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신선하게 찐 도미가 먹고 싶었던 희영은 강의가 없는 날 오후 일찍 수퍼에 들렀다. 그 날 따라 사람이 별로 없어 수퍼마켓 안은 유난히 조용해서 숙자씨의 목소리는 수퍼마켓 입구에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숙자씨와 수산물 코너의 중국 남자가 큰 소리로 다투고 있었다.
“아니, 내가 꼭 생선 대가리도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건 왜 뺀거야? 내가 그것 때문에 저기, 저기 뻐스 스테이션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잖아, 지금!”숙자씨는 크게 분개한 듯 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몸짓은 전투적이었다. 그러나 숙자씨의 한국말을 전혀 못 알아듣지만 (당연하게도), 분위기로 봐서 좋지 않은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는 중국 남자도 성질이 만만치 않았다. 지지않고 역시 큰 목소리로 대거리를 하며, 양 손을 크게 앞으로 내밀어 숙자씨 얼굴에 대고 휘저으며 나가라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 둘의 주위에는 몇 안되는 손님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모두 중국인으로 보였는데 그 중에는 낄낄 대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희영은 마치 이 비웃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 양, 수치심이 들었다. 숙자씨가 희영을 알아보기 전에 희영은 얼른 발걸음을 돌려 서둘러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더 이상은 저 중국 마켓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낮의 불유쾌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에, 셀폰에 숙자씨의 전화 번호가 뜨자 희영은 바로 수신 거부를 눌렀다. 숙자씨는 끈질기게도 연달아 세번이나 더 전화를 했지만 희영은 받지 않았다. 결국 숙자씨는 포기하고 음성 메시지를 남긴 모양이었지만 희영은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아파트 문 앞에 있던 종이 쇼핑백은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에야 발견되었다.
아파트 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숙자씨는 어떻게 희영의 집을 알아냈을까? 다른 입주자들에게 물어봤을까? 내가 집에 들어오는 걸 따라오기라도 한 걸까? 숙자씨의 이런 집요함과 끈질김에 희영은 몸서리가 쳐졌다. 종이 쇼핑백 안에는 두 개의 큰 플라스틱 용기가 담겨 있었다. 뚜껑을 열지 않아도 투명한 용기 하나에는 잡채가 가득, 다른 용기에는 빨간 국물이 가득 담겨 있는게 보였다. 희영은 두번째 용기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차갑게 식은 국물에서 생선 비린내가 옅게 올라왔다. 쑥갓과 무 사이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진 동태 조각들이 보였다. 숙자씨는 중국 마켓에서 쫓겨난 후 버스를 타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가 재빨리 잡채와 동태 찌개를 만들었나보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희영이 사는 동네까지 와서 희영의 집 앞에서 전화를 했겠지. 숙자씨는 희영의 아파트 문 앞에서 얼마를 기다린 걸까? 왜 숙자씨는 희영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희영은 동태 찌개를 앞에 두고 한참을 망연자실히 서 있었다.
결국 손도 대지 않은 잡채와 동태 찌개는 냉장고 한 구석에 잊혀진 채로 방치되다가, 통채로 쓰레기 통에 버려졌다. 그 후로도 숙자씨는 희영에게 여러 번 더 전화를 했지만 희영은 절대 실수로라도 전화를 받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리고 마크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날에야, 희영은 비로소 이제 숙자씨가 불쑥 집으로 찾아와서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었다. 여성 단체의 케이스 매니저에게는 일이 바빠져서 더 이상 도울 수 없다는 간단한 이메일을 보내두었다. 가끔, 이혼 소송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숙자씨가 조금의 위자료라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그 뿐이었다.
숙자씨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한 홈리스의 모습으로 183 다리 아래에 다시 나타난지도 벌써 두달이 지났다. 숙자씨는 가끔은 신호등 아래의 고정석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곤 했다. 왜 하필 이 곳일까? 나를 찾아온 걸까? 희영은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숙자씨가 희영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는 그런 불안감은 없어졌다. 숙자씨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혼 소송이 잘 진행되지 않은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지만, 숙자씨의 눈에 있던 빛이 사라질 때까지, 숙자씨는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숙자씨는 남편에 이어, 딸들에게도 버림받은 걸까? 희영은 케이스 매니저에게 연락해볼까도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와서 그런 들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숙자씨를 집에 데려다 놓을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퇴근 길마다 마주치는 숙자씨의 모습은 매일 매일 조금씩 더 초라하고 조금씩 더 작아지는 듯 했다. 그렇지만 숙자씨의 모습도 두 달이 지나자 더 이상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183 다리 아래에는 그런 모습의 다른 홈리스들도 많았던 것이다. 마크의 말 대로 동양인, 특히 여자 홈리스는 드물었지만, 땟국물이 잔뜩 낀 행색과 햇빛에 갈색으로 그을 대로 그을은 숙자씨는 이제 더 이상 동양인으로도, 여자로도 보이지 않았다. 한 낯에도 어두운 고가 다리 아래에 펼쳐진 카드보드와 넝마들 사이에서 잿빛과 갈색으로 뒤덮인 숙자씨는 완벽히 주변과 동화되어 더 이상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다.
마크와의 동거 생활은 그런 대로 순탄했다.
이런 식으로라면 곧 결혼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마크와는 나이도 , 정치관도, 가치관도 비슷해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같이 살아보니 오래동안 혼자 자취한 경험으로 음식도 잘 하고, 청소도 나름 잘 해서 룸메이트로도 꽤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끔, 아주 가끔 희영은 이유없이 불만이 쌓일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영어를 쓰고와서, 집에서마저 영어로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미국에 와서 10년 이상을 살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할 정도로 영어에는 불편이 없었지만, 영어로 대화를 할 때는 신경을 있는 대로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단어의 발음을 마크가 못 알아 들을 때. 순간 순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할 때. 이런 때 희영이 느끼는 외로움은 혼자 살 때의 외로움보다 더욱 컸다. 희영에게는 이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숙자씨가 느꼈던 외로움이 이런 것이었을까? 내가 가지고 태어난 언어로 더 이상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희영은 가끔 자신이 고립된 섬과 같다고 느꼈다. 숙자씨와 다른 점이라면 희영의 고립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마크와의 동거 생활은 매 순간이 희영이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강의가 일찍 끝나는 날, 마크가 퇴근하기 전에 재빨리 김치 찌개를 끓여먹고, 냄새를 없애느라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촛불을 켜서 냄새를 중화시키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마크의 표정에 냄새를 알아 챈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희영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랜 미국 생활 후에도 김치 찌개를 버리지 못한 자신의 촌스러움 때문인지, 마크와는 평생 같이 김치 찌개를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외로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치 찌개를 끓일 때 가끔 희영은 숙자씨를 생각하곤 했다. 남편의 구박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김치 찌개를 끓여먹었다던 숙자씨. 숙자씨에게 김치 찌개는 어떤 것이었을까? 희영 자신에게 김치 찌개는 어떤 의미일까?강의가 없던 어느 초 여름 날, 마크가 출근하기를 내심 기다려왔던 희영은 마크가 문을 나서자마자 서둘러 발코니로 나갔다. 냉장고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발코니에 보관한 김치는 실 대로 시어 뚜껑을 열자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그렇게 신 김치로 끓인 김치 찌개는 이상한 맛이 났다. 매운 맛을 제외하고는 맛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치 찌개를 한 술 뜨며 희영은 자신도 모르게 오열했다.
미국 생활에 완벽히 동화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실패한 김치 찌개를 먹으며 깨달았기 때문인지,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김치 찌개를 감추고 싶은 구차한 마음 때문인지,오늘도 고가다리 아래서 신호등 옆에 하루 종일 서 있을, 빛을 잃어버린 숙자씨가 생각났기 때문인지,김치 찌개를 먹으면서 숙자씨를 그리워한 자신 때문인지희영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당선소감>
부족함이 많은 글을 세상에 내놓고 떨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내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내 안에 써내려야 할 글이 있는지에 대해 오랜 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오랜 동안의 불안과 초조, 외로움은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나도 몰랐던 나의 여러 모습과 마주치고, 싸우고, 받아들이고, 그런 과정에서 목적없이 흘러가던 나의 삶의 방향을 다시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아직도 때때로 불안과 초조에 숨을 못 쉴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럴 수록 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약하고, 게으른 글쟁이에게 당선이라는 상으로 조금 더 나아갈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예공모전 단편소설 심사평>
심사평 (본심) / 은희경 소설가
당연한 말이지만 소설은 쓰는 사람의 삶에서 나온다. 그러나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소설이 되지 못한다. 쓰는 사람의 사유나 관점, 미적 감수성에 의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말했듯, 소설가는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허물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새로운 집을 짓는다. 그런 점에서 본심에 올라온 다섯 편은 모두 구경할 만한 흥미로운 집이었다.
명광일 씨의 <스트로크>는 발병에서 회복까지의 병상일지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았다.
단문을 사용한 효과적인 심리묘사, 인물과 대화의 배치 등 기교가 뛰어나다. 중반부의 반복되는 부분을 간추리고, 결말의 심경 묘사에 조금 더 공을 들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김문교 씨의 <일맥상통>은 그로서리를 운영하는 중년부부의 반목과 권력 관계를 통해 이민 세대의 자괴감을 그려냈다. 실감나는 에피소드와 디테일 묘사, 능청스러운 이야기 솜씨가 인상적이다. 시종일관 대치하던 아내와 ‘벌레와 구더기’로서 한편이 되는 자조적인 결론은 역설적으로 삶의 품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다만 복선이 없는 갑작스러운 결론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위의 두 작품을 가작으로 뽑았다.
당선작은 조정희씨의 <몰락>이다. 미국인 남편과 딸에게 버림받고 노숙자가 된 중년여성이라는 소재는 뻔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 그러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냉정한 나레이션을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사건 전개나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스스로 부정하고 도망쳐버렸던 노숙자 여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민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여운을 남긴다.
당선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전준성 씨의 <월마트에서 생긴 일>을 흥미롭게 읽었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이민사회의 문제의식 안에 머물러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일상 속의 불안과 폭력의 문제를 신선한 방식으로 다루었다. 구성이나 결말 처리에서 허술한 부분이 있었지만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쓰리라 기대한다. 가장 아쉬운 작품은 김용미 씨의 <솔베이지의 노래>이다.
차분한 문장에 구성이 안정되었으며 인물 또한 설득력이 있다. 상징이나 디테일도 풍부하다. 그러나 상식적인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흠이 되었다.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 밖의 응모자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읽는 이들에게도 즐거운 잔치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신 윤성희 작가님, 은희경 작가님, 포기하지 않도록 항상 옆에 있어 준 우리 언니 영 플레밍, 우리 엄마 최정옥, 나의 베스트 프렌드 윌리엄 캄포스께 감사드립니다.
<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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