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나는 신기한게 많다. 비행기가 살살 달리다가 부웅, 공중부양하는 것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신기하고, 금문교 다리를 붙잡고 있는 수많은 철사들의 모음도 신기하다. 이 엄청난 다리를 무슨 수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험하게 출렁거리는 바다 위를 가로질러 놨을꼬, 참으로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마천루를 짓는 사람, 고가도로를 놓는 사람, 우주선을 쏘는 사람,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 아픈 사람을 재워놓고 그 사람 내부를 온통 휘젓다가 다시 꼬매놓는 사람.. 너무 신기하다. 그 뿐인가, 심지도 않은 호박이 우리 집 마당으로 날라와 싹을 티우고 자라더니 예쁘고 신기하게 열매를 맺어 호박찌게가 되어주는 것도 신기하다.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렸더니 지구 저편의 친구가 모니터 위에서 반가워라 웃는 얼굴로 뜨는 것도 신기하고 여름 방학 두어 달 사이에 애기티가 확 벗겨져 사내녀석으로 변한 손자녀석의 변신도 신기하다.
지난 주에는 신문사에서 마련해 준 시사회엘 다녀왔다. 예전엔 영화구경을 좋아해서 꼼꼼히 평을 미리 읽어보고 취사선택을 해 구경다녔는데 세월이 가더니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인천 상륙작전이란 게 우리는 늘쌍 듣고 배워 당연히 아는 사실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실감나는 총소리, 대포소리를 들으며 작전을 성공시키려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의 피범벅된 모습을 보니 우리의 역사라는 게 정말 새삼스러웠다.
예전엔 스케일이 큰 영화라해도 어설픈데가 있어서 서로 치고 박고 싸워도 주먹이 그냥 스쳐가는 것도 보이고 전쟁터라해도 딱꽁딱꽁 소리만 컸지 그리 실감나는 건 적었는데 이젠 콤퓨터 그래픽도 엄청 발달되고 모든 것이 점점 농도가 짙어져 잔인함과 처절함이 생생해 깜짝깜짝 놀래킨다.
그래서 나는 또 신기해 진다. 저 배우가 진짜로 저렇게 얻어 터지는 모양인데 배우하다 골병드는 거 아닐까? 저 불꽃들이 전부 진짜 총탄이고 대포며 박격포란 걸까? 어떻게 저런 속에서 다치지 않고 촬영을 할까? 감독이란 사람은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과 장면을 연결시키며 진두지휘할까? 그나저나 해수면이 얕아 배로 접근하는 게 진짜로 불가능하다는 인천에 맥아더 장군은 정말 무슨 수로 상륙했던거지? 어떻게 적진에 침투해서 적군들을 죽이고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할수 있었을까? 나같으면 무서워서 오금이 붙어서 꼼짝도 못했을 거 같아. 팔로군이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몸을 감추며 치고 빠지고 활약을 했을까.
오늘 날까지 너무나도 당연히 받아들였던 우리의 오늘이 저 모든 사람들의 피와 땀과 생명을 댓가로 치루고 주어진 거구나, 신기하고 고마웠다. 기껏 스물 남짓했을 군인들. 그들은 듣도 보도 못한 남의 나라의 싸움에 불려가 그 귀한 목숨을 바쳐야 했다. 시사회에는 몇몇 참전 용사들도 있었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촌스런 나일론 한복을 입고 붉은 조화를 손에 들고 수령님을 목놓아 부르면서 행여 누구의 눈에 찍힐세라 목이 터져라 환호하고 손에 불이 나도록 박수치고 몸부림치며 울고, 그렇게 목숨을 연명해야 했을 지도 몰랐다. 늙어 주굴주굴해 진 그들의 손을 꼭 부여잡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되뇌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전쟁때 한 살이었다. 아무 기억은 없다해도 들은 기억들은 몸서리치게 무서운데 이즈음 아이들은 공산주의 무서운 걸 모르는 것 같다.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나눠 먹고 다 같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이란 게 사실 듣기엔 엄청 이상적인 것 같지만 사실 모든 사람은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능력과 특기에 따라 일이 달라야 한다.
게다가 결국은 어떤 형태라도 지배자와 피지배자그룹이 형성되기 때문에 인류사회에 있어 물리적 평등이란 이상적 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이북에선 모두들 함께 공장 밥을 지어먹기 때문에 젊은 이들이 조리를 할 줄 모른단다. 그래서 지역마다의 별미가 없어지고 모든 음식들의 맛이 다 똑 같단다. 참 살기 재미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삼대째의 집권이 가능한 사회,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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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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