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둘 다 50대 후반의 변호사 출신 백인남성인 금년 대선 민주당 부통령후보 팀 케인과 공화당 부통령후보 마이크 펜스 - 정책과 이념은 물론 대조적이지만 출신배경과 경력, 가족사항에서 정치가로서의 기질, 러닝메이트로 처한 입장까지 닮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둘 다 아일랜드계 근로계층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톨릭 학교를 다녔으며 각각 해병대에 복무 중인 아들을 포함 세 자녀를 둔 아버지다. 소탈하고 친화력 좋은 케인은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연방 상원의원이며 사려 깊고 절제력 강한 펜스는 6선 연방 하원의원을 거친 현직 인디애나 주지사로 둘 다 합리적이고 매너 좋은 ‘나이스 가이’여서 당 내 평가도 높다.
부통령후보들에 대한 표밭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최근 갤럽여론조사에 의하면 유권자 10명 중 6명 이상이 두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아는 것도 없다고 답했다. 부통령후보는 대선투표에 별 영향을 안준다는 응답은 75%나 되었다. 원래 부통령 후보라는 자리가 그렇다.
그러나 하도 이상하고 소란스런 대선이어서일까, 금년엔 여론의 무관심이 억울할 정도로 부통령후보들의 일과는 그 어느 해보다 고달파 보인다. 관심을 못 받으면 편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역대 최고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대선후보들의 뒤치다꺼리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부통령후보의 튀는 역할은 상대 대선후보를 사납게 물고 늘어지는 투견(attack dog)노릇이다. 펜스와 케인은 투견은커녕 싸움닭도 아니지만 필요할 때 싸우는 기본 전투력까지 결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를 제대로 공격하는 투견 역할에 전념할 여력이 없다. 갈수록 도를 높여가는 막말 퍼레이드와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는 이메일 스캔들로 논란을 몰고 다니는 ‘새 보스’들의 뒤를 따라가며 “본 뜻은 그게 아니라…” 해명하고 사과하기에 급급해서다.
표정관리를 해야 할 만큼 나날이 승세를 굳혀가고 있는 민주당의 케인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힐러리 클린턴을 “못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별 근거도 내놓지 못한 채 무조건 “믿으라”고 설득해야 한다.
어제도 NBC의 투데이뉴스가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지난 1년간 힐러리가 내놓은 최소한 4번의 이메일 관련 성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그의 불신은 자초한 것이 아닌가”라고 묻자 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난 힐러리가 ‘내가 실수했고 교훈을 얻었다, 다시는 그렇게 안 할 것이다, 사과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누구에게라도 같은 내용을 150~200번씩 묻는다면 매번 정확하게 똑같은 말로 대답하지 못한다. 다를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문제 삼는다…”
연설문 없이도 편안하게 연설 잘한다는 케인에게도 이 정도 궁색한 변명밖에는 힐러리의 신뢰도를 회복시킬 묘안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 듯하다.
훨씬 더 힘든 쪽은 펜스다. 부통령후보로 지명된 후 지난 한 달 가까이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CNN이 어제 ‘트럼프의 27일간 소용돌이’라고 표현한 7월21일 공화전당대회 폐막부터 8월17일 트럼프 캠프조직 전격 개편까지의 그 기간 동안 그의 보스 도널드 트럼프는 전사자 유가족 비하에서 힐러리 암살 시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막말의 논란을 빚으면서 당 안팎 거의 모든 사람과 갈등을 빚었고 지지율은 ‘참패’ 관측이 나올 정도로 곤두박질쳐 왔다.
트럼프의 막말 퍼레이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매번 쓰레기를 치우고 불을 끄며 그 어지러운 사태를 수습하느라 진땀 흘리는 펜스에겐 요즘 별명도 많이 붙었다. 트럼프의 청소부, 소방관, 통역관, 오물처리반, 1인 피해수습반…
노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선 11세 한 소년의 당돌한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요즘 뉴스를 계속 보면서 당신이 트럼프의 정책과 발언을 부드럽게 (해명)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트럼프행정부에서 당신의 역할입니까?” 트럼프가 친 사고의 뒷수습이 주요임무냐고 물은 것이다.
지난 주말 폭스뉴스도 다그쳤다. “당신이 (트럼프의) 청소부인가?” 소년에게도 기자에게도 펜스는 “트럼프와 난 스타일이 다르다 그러나 신념은 같다”면서 트럼프의 스타일이 오해를 부르는 것이라고, 케인보다 더 궁색한 해명으로 일관했다.
‘마이크 펜스 구하기’라는 화두가 제기될 정도로 청소부 노릇이 펜스의 정치미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펜스의 요즈음이 고달프기는 해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구제불능이 되어가는 트럼프의 옆에서 상대적으로 펜스가 “가장 합리적인, 성숙한, 신뢰할만한 공화당 정치가”라는 평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초 보수언론 월스트릿저널의 사설이 트럼프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변하지 않으려면 대선후보 자리를 “마이크 펜스에게 넘겨주라”고 압박했을 정도다.
때때로 트럼프의 극단적 의견과는 다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한편으론 충실한 청소부 역할로 트럼프 지지층의 신뢰도 확보하면서 착실히 정치자산을 쌓고 있는 펜스의 시선은 이미 저 멀리 2020년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금년 본선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욱 고달파질 펜스의 여정이 끝날 투표까지는 아직 82일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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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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