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지나쳤지만 지난 7일이 ‘우정의 날’(Friendship Day)이었다. 발렌타인 데이 연인카드처럼 친구용 카드도 대박을 터뜨릴 줄로 믿고 홀마크가 8월 첫째 일요일을 ‘우정의 날’로 정했다. 97년 전 일인데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 됐다.
지금도 이날 핑계 김에 ‘BFF’(Best Friend Forever, 가장 좋은 영원한 친구)와 한 잔 마시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
우정의 날 하루 전인 지난 6일 뉴욕타임스에 뜨끔한 칼럼이 게재됐다. 제목이 “당신의 친구는 진짜로 당신을 좋아하느냐”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글쎄올시다’이다. 자기가 친구로 꼽은 100명 중 47명은 매정하게도 자기를 친구로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프렌드’와 트위터의 ‘팔로워들’이 남발하는 ‘좋아요(Like)’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란다.
MIT의 알렉스 펜틀랜드 교수는 MBA 과정 학생 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당신은 당신 친구의 친구인가요”라는 타이틀의 보고서에서 본인이 거의 100% 자기 친구일 것으로 믿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그런 사람은 53%였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총 9만2,000여명을 조사한 다른 보고서들도 친구관계의 상호일치 비율이 34~53%에 머문 것으로 분석했다.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심리학) 연구내용도 비슷하다. 자신이 활동하는 사회범주 안의 친구는 통상적으로 150명 정도란다. 그는 친구를 3개 층으로 구분했다. 최고층은 배우자 한명(혹은 BFF까지 두명)이고, 두번째 층은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해 자주 만나는 4명 정도, 나머지 최하층은 친근하게 어울리지만 진정한 친구가 아닌 지인 수준이라고 했다.
던바 교수는 사람들이 시간 제약이나 정서적 역량의 한계 때문에 5명 이상의 BFF를 갖기가 어렵다며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지인이 많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친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고독감과 불안감에 쫓기게 되고, 결과적으로 흡연, 알코올 중독, 비만, 고혈압 등과 같이 질병과 사망의 위험을 높이는 요소가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친구의 중요성을 역설한 명언은 숱하게 많다. “친구는 두 몸에 사는 한 개의 영혼”(아리스토텔레스), “우정은 천천히 쌓되 일단 시작하면 견고하게 지속하라”(소크라테스), “참 우정은 참 사랑보다 드물다”(장 드 라 폰테인), “학교에선 우정을 가르치지 않지만 우정의 뜻을 배우지 못했다면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무하마드 알리) 등이다.
공자는 “세 부류의 유익한 벗과 세 부류의 해로운 벗이 있다.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은 유익한 벗이요, 겉치레를 중시하는 사람, 아첨 잘 하는 사람, 말만 앞세우고 성의가 없는 사람은 해로운 벗이다”라고 가르쳤다(논어). 자기욕심만 채우며 배은망덕한 관중을 끝까지 감싸준 포숙아의 깊은 우정을 칭송한 ‘관포지교’ 고사성어도 있다.
성경도 친구를 예찬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가르쳤다(요15:12~13). 이어 예수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불렀고, 며칠 후 세상 친구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가르침을 실증했다.
언제부턴지 내 이메일 함에는 또래 노친네들이 보낸 ‘좋은 글’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노년의 건강관리나 여가선용에 관한 내용인데 ‘노후생활 10계명’ 따위도 꼭 낀다. “재산을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말라”거나 “목욕을 자주하고 속옷을 매일 갈아 입으라”고 채근하지만 그보다 “즐겁게 오래 살려면 친구와 자주 만나라”는 훈계가 더 우선순위다.
교우관계 폭은 대체로 25세 때 가장 넓고 그 뒤 급격하게 좁아진다는 연구보고서가 최근 보도됐었다. 그 나이쯤 여자는 결혼에, 남자는 사업이나 승진에 관심이 많아져 교제대상도 그쪽으로 제한된단다. 은퇴 후엔 친구도 바닥난다. 거의 10년 전 은퇴한 내게도 옛 친구들 부음이 속속 들려온다. 더 착잡한 건 내게 BFF가 있는지 조차 아리송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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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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